전체 글19 카사블랑카·애즈타임고즈 바이·워너 로고 왓챠에서 옛 영화를 고르다가, 정작 귀에 익은 건 본편이 아니라 로고 인트로에서 흘러나온 몇 마디였다. 카사블랑카의 라이트모티프인 'As Time Goes By'가, 80년 넘게 워너브라더스 로고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안다.이 곡은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영화보다 11년 먼저 태어난 노래였다. 그 사실을 알고 다시 보니, 영화 한 편보다 노래 한 곡이 더 오래 살아남은 셈이다. 로고 몇 마디가 본편보다 먼저 말을 건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를 따라가다 보니 음악감독의 고집, 11년이라는 시차, 80년 동안 이어진 로고까지 한 줄로 엮였다.라이트모티프가 된 단 한 곡카사블랑카의 음악감독 맥스 스타이너는 처음부터 이 노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자신이 새로 곡을 써서 교.. 2026. 6. 20. 피아니스트의 전설, 건반·대결·결말 퇴근하고 자취방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영화가 피아니스트의 전설이다. 평생 배에서 내리지 않은 1900의 건반, 재즈 피아니스트와의 대결, 배와 함께 사라지는 결말 — 이 세 장면이 왜 다시 봐도 숨이 막히는지 정리한다.나인틴 헌드레드, 버지니안호에서 태어난 천재피아니스트의 전설(1998)은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작품이다. 원작은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희곡 노베첸토다. 갓난아기였던 주인공은 호화 여객선 버지니안호의 무도회장 피아노 위에 버려진다. 석탄실 화부 데니 부드맨이 아이를 발견해 아들로 키운다. 그 해가 1900년이라 아이의 이름도 1900이 된다. 1900이 여섯 살이 되던 해 데니 부드맨은 사고로 죽는다. 이후 1900은 평생 배에서 내리지 않는다. 소년 시절 몰래 피아노를 치던 모습을 .. 2026. 6. 20. 화양연화, 이웃·치파오·왈츠 퇴근하고 자취방에서 가장 천천히 다시 보는 영화가 화양연화다. 1962년 홍콩, 같은 날 이사 온 이웃, 매번 다른 치파오, 반복되는 왈츠 — 이 세 가지가 왜 25년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있는지 직접 본 기억을 따라 정리한다.차우와 소려진, 1962년 홍콩의 이웃화양연화(2000)는 왕가위 감독의 작품이다. 1962년 홍콩, 좁은 아파트에 두 가구가 같은 날 이사를 온다. 신문사 기자 차우(양조위)와 비서 소려진(장만옥)이다. 둘의 배우자는 자주 집을 비운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각자의 배우자가 서로 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차우와 소려진은 무협소설을 함께 쓰며 자주 만난다. 명목은 합작이지만, 실제로는 외로움을 견디는 시간을 같이 보내는 쪽에 더 가깝다. 두 사람의 관계는 끝까지 명확.. 2026. 6. 20.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여름·만돌린 퇴근하고 자취방에서 가장 자주 트는 영화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다. 크레마의 여름, 자연광으로 채운 연출, 만돌린 선율 -이 세 가지가 왜 6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지 직접 본 기억을 따라 정리한다.엘리오와 올리버, 크레마의 여름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작품이다. 안드레 애치먼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배경은 1983년 여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크레마다. 열일곱 살 엘리오는 가족 별장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녹음하며 여름을 보낸다. 아버지의 여름 연구보조원으로 스물네 살 올리버가 찾아온다. 두 사람은 6주 동안 한집에서 지낸다. 엘리오는 올리버의 첫인상을 거만하다고 느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기운다. 영화는 엘리오의 시선에서만 진행된다. 다른 인물의 속내.. 2026. 6. 20. 미션, 과라니족·오보에·넬라판타지아 가브리엘 신부가 화살 앞에서 오보에를 꺼내 드는 장면 하나로 기억되는 영화가 있다. 1986년작 미션이다.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이 과라니족 마을 앞에서 들려준 그 선율은 훗날 넬라 판타지아로 다시 태어났고, 그 탄생에는 한 가수의 2년에 걸친 편지가 있었다.예수회 신부와 과라니족, 미션의 역사적 배경영화는 1750년대 남미를 배경으로 한다. 마드리드 조약으로 스페인 영토였던 과라니족 마을이 노예제를 운용하던 포르투갈로 편입되며 갈등이 시작된다. 영화는 한 신부가 십자가에 묶인 채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으로 문을 열어,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가 그 뒤를 이어 같은 마을로 향하는 위험을 먼저 보여준다. 가브리엘은 평화적 선교를 고수하지만, 과거 노예상이었던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동생 펠리페.. 2026. 6. 20. 이퀼리브리엄, 약물·음악·침묵 이퀼리브리엄은 감정을 약물로 통제하는 도시 리브리아를 배경으로 한 2002년 SF영화다. 프레스턴이 비밀 창고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듣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감정 회귀를 압축하고, 그 장면은 소리마저 금지한 그라마톤 체제의 침묵 위에서 터진다. 커트 위머 감독의 데뷔작이며 주연은 크리스천 베일이다. 한국에서는 2003년 10월 12일에 개봉했다. 이 글에서는 그 한 장면이 영화 전체를 어떻게 뒤집는지 살펴본다.프로지움과 감정 금지 사회의 구조리브리아는 3차 대전 이후 세워진 도시국가다. 전쟁의 원인을 감정으로 규정하고 전 국민에게 프로지움이라는 약물을 정기 투약한다. 이 약물은 사랑과 분노,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차단한다. 통치자는 신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거리 곳곳의 화면을 통해 설교한다. 감정을.. 2026. 6. 19.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