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하고 자취방에서 가장 자주 트는 영화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다. 크레마의 여름, 자연광으로 채운 연출, 만돌린 선율 -이 세 가지가 왜 6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지 직접 본 기억을 따라 정리한다.
엘리오와 올리버, 크레마의 여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작품이다. 안드레 애치먼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배경은 1983년 여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크레마다. 열일곱 살 엘리오는 가족 별장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녹음하며 여름을 보낸다. 아버지의 여름 연구보조원으로 스물네 살 올리버가 찾아온다. 두 사람은 6주 동안 한집에서 지낸다. 엘리오는 올리버의 첫인상을 거만하다고 느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기운다. 영화는 엘리오의 시선에서만 진행된다. 다른 인물의 속내는 거의 비치지 않는다. 엘리오의 아버지 펄먼 교수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채면서도 침묵으로 자리를 지킨다. 영화 후반, 아버지가 엘리오에게 건네는 대화가 이 영화에서 가장 길게 이어지는 대사 장면이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엘리오 또래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망설임이 유난히 또렷하게 남았다. 다시 보면 올리버보다 엘리오의 표정 변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안드레 애치먼 원작은 더 긴 시간을 다루지만, 영화는 한 여름에 모든 걸 압축한다. 압축된 만큼 감정의 밀도가 높다. 원작 각색은 제임스 아이보리가 맡았고, 이 작업으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았다. 아이보리는 당시 89세로 오스카 경쟁부문 최고령 수상자가 됐다. 엘리오 역은 티모시 샬라메, 올리버 역은 아미 해머가 맡았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자연광과 크레마 풍경
이 영화는 크레모나현 크레마 일대에서 33일간 촬영했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인공조명을 최소로 쓰고 자연광을 그대로 살렸다. 한낮의 햇빛, 저녁의 긴 그림자, 비 온 뒤의 흐린 빛이 장면마다 다르게 깔린다. 카메라는 인물을 멀리서 오래 비추는 방식을 즐겨 쓴다. 자전거로 들판을 가로지르는 장면, 호수에서 수영하는 장면 모두 풍경 속에 인물을 작게 둔다. 나는 이 점이 가장 좋았다. 감정을 대사로 설명하지 않고 풍경의 시간으로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촬영 중 예기치 않은 폭우가 잦았다고 하는데, 그 날씨조차 영화의 질감으로 들어갔다. 별장 안 서재, 식탁, 정원 같은 일상 공간이 반복해서 나오며 그 계절의 온도를 쌓아간다. 인물의 옷차림도 시간을 따라 조금씩 변한다. 초반의 짧은 반바지가 후반에는 긴 셔츠로 바뀌는 식이다. 이런 작은 디테일이 대사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여름만 되면 크레마의 들판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 화려한 사건 없이도 풍경만으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연출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풍경을 계속 보여주면서도 빛의 색이 달라지는 걸 알아채는 재미가 있다.
Mystery of Love, 만돌린이 대신한 말
주제곡은 수프얀 스티븐스의 Mystery of Love다. 곡은 만돌린과 가벼운 목소리로만 이루어져 있다. 화려한 편곡이 없어서 두 사람의 조심스러운 관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영화 초반에는 엘리오가 직접 피아노로 곡을 변주해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는 만돌린 없이 건반 소리만으로 같은 멜로디가 흐른다. 영화 후반, 벽난로 앞에 앉은 엘리오의 얼굴을 카메라가 오래 비추는 장면에 이 곡의 원곡 버전이 깔린다. 대사 없이 표정만으로 이어지는 그 장면에서, 음악이 인물의 마음을 대신 말한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스티븐스에게 내레이션을 부탁했는데, 스티븐스는 대신 오리지널 곡을 쓰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나온 곡이 Mystery of Love와 Visions of Gideon이다. 이 곡은 2018년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수상은 코코의 Remember Me가 가져갔다. 나는 처음 들었을 때 멜로디만 먼저 들어왔다. 한참 지나 가사를 따로 찾아 읽고서야 영화와 곡이 같은 정서를 향한다는 걸 알았다. 같은 멜로디가 피아노와 만돌린으로 두 번 변주되는 구성도 다시 듣고서야 알아챘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이 곡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창밖을 오래 본다. → Mystery of Love 공식 뮤직비디오(유튜브)
핑계 한 줄
이 영화를 다시 본 건 이번이 네 번째다. 매번 다른 장면이 마음에 걸린다. 처음엔 첫사랑의 설렘만 보였는데, 지금은 올리버가 떠난 뒤 엘리오 아버지가 건네는 위로의 말이 더 오래 남는다. 나이가 들면서 이 영화가 다르게 읽힌다는 게 신기하다. 다만 후반부 시간 전개가 다소 급하다는 인상은 여전하다. 마지막 통화 장면 전까지의 여백이 조금 더 있었으면 했다. 6주라는 짧은 기간을 영화 한 편에 다 담다 보니 일부 감정선이 압축된 느낌도 든다. 그래도 퇴근길에 만돌린 선율만 들으면 다시 이 영화를 켜고 싶어진다.
자주 묻는 질문
Q.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실화인가? A. 안드레 애치먼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허구의 이야기다.
Q. 엘리오와 올리버 배우는 누구인가? A. 엘리오는 티모시 샬라메, 올리버는 아미 해머가 연기했다.
Q. Mystery of Love는 상을 받았나? A. 2018년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수상은 코코의 Remember Me가 가져갔다.
참고 자료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https://ko.wikipedia.org/wiki/콜_미_바이_유어_네임 (위키백과)
- Sufjan Stevens' Mystery of Love Nominated for Oscar — https://www.broadwayworld.com/bwwmusic/article/Sufjan-Stevens-Mystery-of-Love-Nominated-for-Oscar-20180123 (2018.1.23)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https://cine21.com/movie/info/?movie_id=51931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