쉘부르의 우산(1964) OST 'I Will Wait for You'는 미셸 르그랑이 작곡하고 자크 데미가 가사를 썼다. 정작 스크린 속 까뜨린느 드뇌브의 노래는 다니엘 리까리라는 다른 가수의 목소리였다. 대사조차 전부 노래로 처리한 이 '필름 오페라'가 어떻게 완성됐는지 살펴본다.
비 내리는 프랑스 소도시 거리, 파스텔톤 상가 건물들
스크린 뒤에 숨은 목소리, 다니엘 리까리
까뜨린느 드뇌브가 우산가게 딸 즈느비에브를 연기하며 부르는 노래는, 사실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다. 실제 노래를 부른 사람은 프랑스 가수 다니엘 리까리였다. 드뇌브는 립싱크로 그 목소리에 맞춰 연기했고, 크레딧에는 이 사실이 명확히 기재됐다. 대역 가수를 쓰는 관행이 낯설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대사 전체가 노래인 이 영화에서는 그 목소리가 곧 캐릭터의 전부였다.
리까리는 이후에도 여러 프랑스 영화와 광고 음악에서 노래를 불렀지만, 대중에게 각인된 것은 언제나 드뇌브의 얼굴이었다. 목소리의 주인과 얼굴의 주인이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이상한 균열처럼 다가온다. 노래가 감정을 실어 나르는 영화인데, 정작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은 화면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중학생 무렵 어느 주말, 텔레비전 명화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다. 더빙판이었는데도 노래 부분만은 원어 그대로 흘러나왔던 기억이 있다. 목소리와 입 모양이 어긋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는 당연하게 여겼다. 훗날 그 목소리가 드뇌브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어긋남 없던 화면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미셸 르그랑, 대사 없는 뮤지컬을 설계하다
이 영화의 모든 대사는 노래로 처리된다. "빵 좀 주세요" 같은 일상적인 말조차 선율에 얹혀 나온다. 이런 형식 때문에 '필름 오페라'라는 별명이 붙었다. 감독 자크 데미는 이 파격적인 형식을 밀어붙였고, 미셸 르그랑은 그 전체를 음악으로 지탱해야 했다. 대사가 따로 없으니 스코어와 노래를 구분하는 경계 자체가 사라진 셈이다.
르그랑은 재즈 피아니스트 출신답게 화성 진행에서 재즈적 색채를 곳곳에 심었다. 그런데 그 위에 프랑스 상송 특유의 서정성을 겹쳐 놓았다. 두 어법이 부딪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이 이 영화 음악의 특징이다. 즈느비에브와 기의 이별 장면에서 흐르는 주제 선율은 이후 재회 장면에서 다시 변주되어 돌아온다. 같은 멜로디가 처음에는 상실로, 나중에는 회한으로 들리게 설계된 것이다.
만약 이 영화가 일반적인 뮤지컬처럼 대사와 노래를 번갈아 배치했다면, 감정의 밀도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대사마저 노래로 만든 그 고집스러운 형식 때문에, 관객은 영화 내내 음악 밖으로 나갈 틈을 얻지 못한다. 이 형식이 훗날 감독의 다른 작품 '로슈포르의 숙녀들'로 이어지며, 자크 데미와 미셸 르그랑의 협업은 하나의 스타일로 굳어졌다.
스티브 로렌스에서 코니 프랜시스까지
원곡 프랑스어 제목은 'Je ne pourrai jamais vivre sans toi'(나는 당신 없이 살 수 없을 거예요)다. 노먼 김벌이 영어 가사를 새로 쓰면서 'I Will Wait for You'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이 영어 버전이 오히려 원곡보다 널리 퍼졌다. 1965년 미국 가수 스티브 로렌스가 이 곡을 녹음해 빌보드 버블링 언더 차트 113위에 올렸고, 이 영어 버전은 제38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 연도 | 아티스트 | 비고 |
|---|---|---|
| 1965 | 스티브 로렌스 | 빌보드 버블링 언더 113위 |
| 1966 | 코니 프랜시스 | 앨범 「Movie Greats of the 60s」 수록 |
| 1967 | 셰어(Cher) | 솔로 커버 발매 |
'I Will Wait for You' 주요 영어 커버 연표
한 편의 프랑스 뮤지컬 삽입곡이, 몇 해 사이 미국 팝 시장에서 서로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로 계속 다시 불렸다. 원곡이 자국에서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번안곡의 생명력은 원곡과 별개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이 곡이 보여준다. 2002년 미국 애니메이션 시리즈 '퓨처라마'의 한 에피소드에 이 곡이 삽입되며 다시 한번 새로운 세대에게 소개되기도 했다.
스트리밍으로 이 곡의 여러 버전을 이어 들어본 적이 있다. 코니 프랜시스의 버전은 정갈했고, 셰어의 버전은 한층 허스키했다. 같은 멜로디인데 부르는 사람마다 곡의 온도가 달랐다. 원곡의 다니엘 리까리 목소리로 되돌아왔을 때, 비로소 그 절제된 감정이 다시 낯설게 다가왔다.
위 플레이어가 재생되지 않으면 아래 버튼으로 들을 수 있다.
Spotify에서 듣기 — I Will Wait for You
음원 출처: Spotify 공식 플레이어 — Michel Legrand, 'The Umbrellas of Cherbourg ("I Will Wait for You")' (Cinema Classics of The '60s, 2008)
빌린 목소리, 세 줄로
드뇌브의 노래는 다니엘 리까리의 목소리였다
스크린 속 얼굴과 노래한 사람이 다르다는 사실이, 이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낯선 균열로 다가온다.
대사조차 노래로 처리한 '필름 오페라'였다
일상적인 말 한마디까지 선율에 얹은 형식이, 스코어와 노래의 경계를 지워버렸다.
영어 번안곡이 원곡보다 멀리 퍼졌다
스티브 로렌스, 코니 프랜시스, 셰어까지 여러 목소리를 거치며 이 곡은 원곡과 다른 생명력을 얻었다.
참고한 기록들
- Wikipedia(영문), 「I Will Wait for You」 항목 — 영어 번안·커버 발매 기록
- Wikipedia(영문), 「The Umbrellas of Cherbourg」 항목 — 제작진·크레딧 정보
- Wikipedia(영문), 「Danielle Licari」 항목 — 더빙 보컬 이력
이 목소리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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