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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비하인드

암살자(들) OST 세헤라자데, 왜 바순일까

by 핑계왕초 2026. 10. 3.

《암살자(들)》에서 끝까지 귀에 남은 소리가 정말 총성이었을까. 허진호 감독의 2026년 영화는 1974년 8월 15일을 쫓다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제2악장을 불러낸다. 극장을 나서며 붙들고 온 것은 총소리가 아니라 낮게 울리던 바순 한 줄이었다. 그 소리를 따라가 본다.

암살자(들) 2026 세헤라자데 제2악장 바순을 떠올리게 하는 빈 극장 객석 위 영사기 빛줄기와 낮은 음파 추상 일러스트

빈 객석 위로 빛이 지나가고, 낮은 음 하나가 오래 맴돈다

목차
  1. 왜 하필 세헤라자데였을까
  2. 흑백 TV 앞의 여름날
  3. 조영욱 음악과 갈라지는 지점
  4. 대답 없는 이야기로 남다

왜 하필 세헤라자데였을까

〈세헤라자데〉 작품번호 35는 1888년에 완성된 교향 모음곡(여러 악장을 하나의 이야기처럼 묶은 관현악곡)이다. 『천일야화』에서 소재를 가져왔고 모두 네 악장이다. 영화가 꺼내 든 것은 그중 제2악장이다.

악장 표제 귀에 먼저 오는 소리
제1악장 바다와 신드바드의 배 저음 합주로 밀려오는 술탄의 주제
제2악장 칼렌더 왕자의 이야기 바이올린 독주 뒤에 홀로 나오는 바순
제3악장 젊은 왕자와 공주 느리고 달콤한 현악 선율
제4악장 바그다드의 축제와 난파 몰아치는 관현악 총주

〈세헤라자데〉 네 악장과 각 악장의 첫인상

귀를 붙잡은 것은 바순이었다. 낮고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소리다. 영웅이 들어설 때 울리는 음악과는 거리가 멀다. 어디선가 떠돌다 나타난 사람이 품속에 감춰둔 이야기를 꺼내는 듯했다. 악장 첫머리, 바이올린 독주가 끝나자마자 그 소리가 홀로 들어선다.

Spotify에서 바순 독주 듣기

음원 출처: Spotify — 토머스 비첨 지휘·로열 필하모닉, 'Scheherazade, Op. 35: II. The Kalendar Prince' (1957년 녹음 재발매반). 영화에 쓰인 녹음과 다를 수 있다.

칼렌더라는 이름부터 묘하다. 서양식 왕자라기보다 이슬람 문화권을 떠도는 탁발 수도승에 가까운 말이다. 왕자인지 방랑자인지 모를 사람의 목소리. 1974년을 다루는 영화가 이 악장을 고른 까닭이 그 모호함에 있지 않았을까.

흑백 TV 앞의 여름날

그해 여름, 중학생이었다. 광복절 경축식 중계를 흑백 TV로 보고 있었다. 화면이 흔들리고 총성이 났다. 온 가족이 숨을 멈췄다.

저녁이 되자 동네 어른들이 골목 어귀에 삼삼오오 모였다. 문세광의 이름과 북한을 입에 올리며 혀를 찼다. 어린 귀에도 그 목소리들은 하나같이 확신에 차 있었다. 그날의 이야기는 그렇게 한 줄로 정리되어 집집마다 스며들었다.

영상 출처: YouTube, 「[암살자(들)] 메인 예고편」

영화는 바로 그 경축식장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공식 수사는 문세광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났다. 영화는 형사 박철구(유해진)와 기자 김재환(박해일), 한영일(이민호)의 눈으로 남은 의문을 따라간다.

어두운 공기를 따라가던 화면 위로 낯익은 클래식 선율이 스며드는 순간이 있었다. 영화의 시간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누군가는 사건을 쫓고, 누군가는 감추고, 누군가는 본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 틈에서 바순 하나가 천천히 말을 걸었다. 아직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고.

이 선율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장면은 사건 기록처럼 건조하게 지나갔을 것이다. 바순이 들어오면서 화면은 기록에서 이야기로 넘어간다. 누군가 들려주는, 끝이 정해지지 않은 이야기로.

조영욱 음악과 갈라지는 지점

음악감독은 조영욱이다. 「남산의 부장들」, 「헌트」, 「헤어질 결심」의 음악을 맡았던 사람이다. 개봉 전 소개 자료에서도 그의 음악이 사건의 긴장과 인물의 감정을 밀어 올린다고 설명했다.

소리의 설계도 촘촘하다. 철구가 계단을 뛰어오르는 추격 장면에는 학원 수강생들의 타자기 소리가 리듬처럼 섞여든다. 허진호 감독은 이 추격을 소리와 이미지로 찍어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색보정과 음향은 덱스터 스튜디오와 라이브톤이 함께 맡았다.

조영욱의 음악과 타자기 소리는 앞으로 밀고 나간다. 〈세헤라자데〉의 바순은 다르다. 밀지 않고 멈춰 세운다. 들으면서 그 차이가 가장 선명했다. 긴장이 쌓이는 음악 사이에 1888년 러시아에서 쓰인 선율이 끼어들어, 잠시 숨을 고르게 한다.

대답 없는 이야기로 남다

짚어둘 것이 있다. 〈세헤라자데〉는 영화 속 누군가를 그리려고 만든 음악이 아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독주 바이올린만 세헤라자데를 뜻한다고 했다. 다른 선율에 특정 인물을 담은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악장 제목도 일부러 모호하게 남겼다.

그러니 영화 속 바순의 의미는 작곡가의 의도가 아니다. 영화와 음악이 만나 새로 생긴 해석이다. 그 점이 오히려 좋다. 바순은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하다가 사라진다. 그 빈자리에 관객은 저마다의 생각을 집어넣는다.

영화를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뜨겁다. 정치권 일각은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한다. 제작진은 특정 인물을 배후로 규정하려는 작품이 아니라고 밝혔다. 감독도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고 했다. 시사회에서는 정답을 푸는 것보다 1974년의 공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음악도 범인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기보다 그 공기 속을 맴도는 질문에 가깝다.

쉰 해 남짓 지나 극장 객석에 앉으니 그날의 흑백 화면이 다시 떠올랐다. 골목 어른들의 단단하던 목소리와 스크린 위의 의문이 자꾸 겹친다. 누가 방아쇠를 당겼는지, 진실이 어디쯤 있는지. 머릿속에서 그 장면과 〈세헤라자데〉가 흐르던 화면이 오락가락한다.

어둠 속에서 잠깐 들려온 바순. 왕자인지 방랑자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 그리고 아직 대답되지 않은 이야기 하나. 그 음악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진실이 아직 살아 있다고, 낮게 말하고 있었다.

바순이 남긴 세 줄

  • 《암살자(들)》에서 가장 오래 남는 소리는 총성이 아니라 〈세헤라자데〉 제2악장의 낮은 바순이다.
  • 1974년 흑백 TV로 본 그날이, 1888년의 선율을 입은 2026년 영화 안에서 다시 물음이 된다.
  • 감춰진 진실 위로 음악이 흐르던 또 한 편, 「태양은 가득히」의 바다로 이어 본다.

참고한 기록들

핑계왕초

1974년 여름을 흑백 TV로 지켜본 중학생이, 올가을 극장에서 총성 대신 바순 한 줄을 붙들고 나왔습니다. 영화음악 속 낯익은 선율이 새 이야기를 얻는 순간을 적습니다. 본 글의 자료는 2026.10.03 기준으로 확인했습니다.

이 음악이 궁금하다면

1960년 여름의 지중해에서도 음악은 범인을 가리키지 않았다. 햇빛 아래 감춰진 것을 그저 오래 비추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