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영화 <졸업>의 사운드트랙에는 애초에 새로 만든 곡이 거의 없었다. 마이크 니콜스는 편집실에서 임시로 걸어둔 사이먼 앤 가펑클의 옛 노래를 그대로 밀어붙였고,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는 정작 두 사람도 모르게 전자악기가 덧입혀진 채 이미 1위를 찍었던 곡이었다.
공항 무빙워크 위, 벤자민을 감싸던 그 곡은 원래 이 장면을 위해 쓰인 게 아니었다.
니콜스가 편집실에 걸어둔 임시곡
그 노래를 처음 들은 건 다방 스피커에서였다. 곡명도 가수 이름도 모른 채 몇 소절을 흥얼거리다가, 한참 뒤에야 그것이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라는 걸 알았다. 니콜스가 이 곡을 처음 만난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촬영 전부터 매일 아침 출근길 샤워를 하면서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반을 들었고, 그 습관을 편집실까지 그대로 가져갔다.
애초 계획은 달랐다. 니콜스는 사이먼 앤 가펑클에게 새 곡 네 곡을 의뢰했지만, 촬영이 끝날 무렵 받아 든 것은 세 곡뿐이었다. 남은 자리는 임시로 '에이프릴 컴 쉬 윌',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스카버러 페어'를 걸어 채웠다. 문제는 편집이 끝나갈수록 이 임시곡들을 뗄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벤자민이 공항 무빙워크 위를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오프닝에 이 곡을 걷어내는 순간, 장면은 그저 한 남자가 걷는 컷으로 되돌아갔다.
그래서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처음부터 '작곡'된 것이 아니라 '선택'된 것에 가깝다. 데이브 그루신이 담당한 재즈풍 연주곡들이 장면 사이를 메우긴 했지만, 정서를 끌고 가는 축은 이미 세상에 나와 있던 노래들이었다. 곡을 새로 쓰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감정을 가져다 붙이는 방식 — 지금은 흔하지만, 그때는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몰래 덧입힌 전자기타와 드럼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는 원래 이런 곡이 아니었다. 1964년 첫 앨범 '웬즈데이 모닝, 3 A.M.'에 어쿠스틱 기타 하나로 실렸을 때는 반응이 없어 앨범은 팔리지 않았고, 사이먼은 영국으로, 가펑클은 학교로 돌아갔다. 이듬해 봄, 보스턴과 플로리다 일부 라디오에서 이 곡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반응을 지켜본 프로듀서 톰 윌슨은 두 사람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원곡에 전자기타와 베이스, 드럼을 덧입혔다. 밥 딜런의 '라이크 어 롤링 스톤' 세션에 참여했던 연주자들을 그대로 불러들인 작업이었다. 1965년 9월 싱글로 나온 이 버전은 이듬해 1월 빌보드 1위에 올랐다. 사이먼은 그해 가을 덴마크에서 공연 중 빌보드 차트를 뒤적이다가 자기 곡이 1위에 올라 있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고 한다.
요즘은 옛 영화를 다시 찾아볼 때 유튜브나 스트리밍을 켠다. 최근 이 곡을 다시 들으며 예전 LP로 듣던 느낌과 비교해 봤는데, 리마스터판은 전자기타 소리가 앞으로 나와 있어 원곡자도 몰랐던 그 개입이 오히려 또렷하게 들렸다. 허락 없이 얹힌 소리가 곡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셈이다.
음원 출처: Spotify 공식 플레이어 — Simon & Garfunkel, 'The Sound of Silence' (The Graduate, 1968)
사이먼이 마지못해 허락한 이유
니콜스가 콜롬비아 레코드 회장 클라이브 데이비스를 찾아가 곡 사용 허락을 구했을 때, 정작 사이먼은 영화에 곡을 붙이는 일을 탐탁지 않아 했다. 음악을 영화에 파는 일처럼 여긴 탓이다. 마음을 바꾼 건 니콜스의 각본과 대화였다. 그는 새 곡을 한두 곡 써보기로 했고, 그중 하나가 원래 '미시즈 루스벨트'라는 제목으로 만지작거리던 미완성곡이었다. 니콜스는 음절 수가 완벽하다며 이름만 '미시즈 로빈슨'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재개봉관에서 이 영화를 다시 봤을 때는 순서가 뒤바뀌어 있었다. 처음 볼 때는 벤자민의 표정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다시 보니 전자기타 전주가 먼저 들리고 그다음에야 벤자민의 얼굴이 보였다. 영화는 시작할 때 이 곡으로 벤자민을 공항 무빙워크에 세워두고, 끝날 때는 같은 곡으로 그를 버스 맨 뒷자리에 앉혀 놓는다. 달아나는 데는 성공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텅 비어 있다.
이미 존재하는 노래로 극의 감정을 대신하는 방식은 이듬해 <이지 라이더>로 이어지며 하나의 흐름이 됐다. 새로 곡을 쓰는 대신 이미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었던 노래를 빌려 오는 것 — 니콜스가 편집실에서 임시곡을 버리지 못했던 그 우유부단함이, 결국 영화음악을 만드는 새로운 방식 하나를 열어 놓은 셈이다.
세 줄로 읽는 핵심
임시곡이 그대로 완성곡이 됐다
니콜스는 편집 중 임시로 걸어둔 사이먼 앤 가펑클의 곡을 떼어내지 못했고, 결국 그대로 정식 사운드트랙으로 남겼다.
전자기타는 몰래 덧입혀졌다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는 원곡자들도 모르는 사이 프로듀서가 전자악기를 얹어 1위 곡으로 만들어 놓았다.
폴 사이먼은 영화를 믿지 않았다
사이먼은 영화 음악을 '파는 일'로 여겨 주저했지만, 니콜스의 각본과 재치에 마음을 바꿨다.
참고한 기록들
- 위키백과 — The Sound of Silence, The Graduate (soundtrack)
- Variety — 'The Graduate' at 50: How Simon & Garfunkel's Soundtrack Became a Hit
- Billboard — Simon & Garfunkel 'The Sound of Silence' 50th anniversary 기록
핑계왕초
영화음악과 OST에 새겨진 시간을 기록합니다. 오래된 영화를 다시 찾아보며 그 안에 얹힌 곡들의 사연을 좇는 걸 좋아합니다. 본 글의 자료는 2026.09.12 기준으로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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