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원룸에서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1997)의 수용소 확성기 장면을 유튜브로 다시 틀었다. 거기서 흐르는 노래는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 속 '뱃노래'다. 1999년 아카데미 음악상은 이 곡이 아니라 니콜라 피오바니의 스코어가 받았다.
창문 너머로 노래를 보내던 장면을 떠올리며
노래가 흐르자 동공이 먼저
수용소 배식 시중을 들던 귀도가 낡은 축음기를 찾아낸다. 레코드 더미에서 고른 건 한 장. 아내 도라와 처음 눈을 맞추던 오페라 극장에서 흐르던 바로 그 곡이다. 귀도는 확성기 나팔을 여성 수용동 쪽 창문으로 돌린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이었다. 동공이 갑자기 커졌다. 대사 한 줄 없는 장면인데,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아들었다.
곡은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1881년 초연) 중 이중창 '아름다운 밤, 오 사랑의 밤'이다. 흔히 '뱃노래'라 부른다. 바르카롤레(베네치아 뱃사공의 노래처럼 흔들리는 6/8박자 곡) 형식이라 선율이 물결처럼 오르내린다.
이 음악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귀도는 철조망 너머로 소리를 질러야 했을 것이다. 대신 둘만 아는 노래 한 곡이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을 실어 보낸다.
선율이 데려간 양지극장 앞
정작 1999년 제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받은 건 이 오페라 곡이 아니었다. 니콜라 피오바니가 이 영화를 위해 새로 쓴 스코어(한 영화만을 위해 작곡한 배경음악)였다. 피오바니는 펠리니의 말년작 '진저와 프레드', '인터뷰', '달의 목소리'의 음악을 맡았던 작곡가다.
그의 메인 테마는 원래 가사 없는 연주곡이다. 2000년, 이스라엘 가수 노아가 오랜 음악 동료 길 도르와 함께 영어 가사를 붙였다. 제목은 'Beautiful That Way'. 그해 3월에 나온 앨범 'Blue Touches Blue'에 실렸다.
이 노래를 듣다가 엉뚱한 곳으로 끌려갔다. 연신내 양지극장 앞이다. 그리고 아버지.
수용소 영화의 엔딩 테마가 왜 하필 그 극장 앞에 데려다 놓았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와 아들의 영화여서였을까. 그 물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기로 한다.
두 번째에야 들린 기타
한 번 더 틀었다. 처음엔 노아의 목소리만 들렸다. 두 번째에야 그 뒤에 깔린 기타가 들렸다.
가사를 함께 쓴 길 도르는 노아 곁에서 오래 기타를 쳐 온 연주자다. 노래 하나를 두 사람이 나눠 들고 있었던 셈이다. 앞에 선 목소리만 듣느라, 뒤에서 내내 받치던 소리를 처음엔 놓쳤다.
확성기 장면도 그렇다. 화면은 귀도를 비추지만, 노래는 보이지 않는 창문 너머로 간다. 세 번째로 들으면 또 무엇이 들릴까.
확성기 너머 세 줄
- 수용소 확성기로 흐른 노래는 피오바니가 아니라 오펜바흐의 오페라 '뱃노래'였다.
- 아카데미 음악상은 피오바니의 스코어가 받았고, 그 테마는 2000년 노아의 'Beautiful That Way'로 다시 불렸다.
- 펠리니의 마지막 작곡가 피오바니 이전, 펠리니 곁에는 '달콤한 인생'(1960)의 니노 로타가 있었다.
참고한 기록들
- 영어 위키백과 'Life Is Beautiful' 문서
- 영어 위키백과 'Noa (singer)' 문서
- 노아 공식 웹사이트 noasmusic.com, 'Beautiful That Way (La vita è bella)' 소개 글
핑계왕초
영화음악과 OST에 새겨진 시간을 기록합니다. 이 글은 해당 장면과 노래를 다시 보고 들은 저녁의 메모에서 출발했습니다. 본 글의 자료는 2026.09.20 기준으로 확인했습니다.
OST가 남긴 자리, 한 편 더
피오바니가 펠리니의 마지막 음악을 맡기 전, 그 자리에는 니노 로타가 있었다. 트레비 분수 앞에서 흐르던 로타의 선율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