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음악 시간, 선생님은 이 노래를 오스트리아 민요라고 가르쳤다. 사운드 오브 뮤직 속 폰 트랩 대령이 부르는 에델바이스는 사실 1959년 브로드웨이를 위해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가 새로 쓴 곡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이 오해는 세계 곳곳에서 이어졌다.
알프스 능선 위, 기타를 든 실루엣 하나와 에델바이스 군락
왜 이 곡이 필요했나
1959년,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이 보스턴에서 프리뷰 공연(정식 개막에 앞서 관객 반응을 미리 시험하는 공연)을 시작했을 때 에델바이스는 대본에 없었다. 폰 트랩 대령이라는 인물에게 조국을 향한 마음을 담을 노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리처드 로저스가 먼저 왈츠 선율을 썼고,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가 그 위에 가사를 얹었다. 두 사람이 평소 작업하던 순서와는 정반대였다.
해머스타인은 이미 위암을 앓고 있었다. 에델바이스는 그가 남긴 마지막 가사가 됐고, 브로드웨이 개막 아홉 달 뒤 그는 세상을 떠났다. 라디오에서 처음 이 선율을 들었을 때는, 작은 들꽃 하나에 이별의 말을 담았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저 다정한 곡이라고만 생각했다.
세월이 지나 배경을 알고 다시 들으니 같은 왈츠가 다르게 들렸다. 처음엔 자장가처럼 편안했는데, 지금은 죽음을 앞둔 사람이 고른 마지막 단어처럼 들린다.
브로드웨이 초연에서 폰 트랩 대령을 맡은 배우는 오스트리아 출신 민속 가수 테오도어 비켈이었다. 로저스는 그를 염두에 두고 화려한 편곡 대신 기타 하나로도 부를 수 있는 단순한 선율을 골랐다. 꾸밈이 적을수록 더 진짜처럼 들린다는 계산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잘츠부르크 음악제, 그 장면
무대 버전에서 에델바이스는 축제 장면 단 한 번 불린다. 그런데 영화는 이 곡을 두 번 쓴다. 아이들과 다시 노래하게 된 폰 트랩 대령이 서재에서 조용히 부르는 장면이 먼저 나오고, 잘츠부르크 음악제의 공개 무대에서 다시 불린다. 사적인 화해의 노래가 공적인 저항의 노래로 반복되는 구조는 무대에는 없던, 영화가 새로 만든 장치다.
그런데 이 장면들, 목소리의 주인은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아니다. 그는 실제로 촬영장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지만, 완성된 필름에는 성우 빌 리의 목소리가 더빙(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녹음해 배우의 입 모양에 맞춰 넣는 방식)됐다. 같은 영화에서 줄리 앤드류스는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노래했다. 유독 폰 트랩 대령의 목소리만 다른 사람 것이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몰랐다.
노래만이 아니다. 영화 마지막, 가족이 산을 넘어 스위스로 탈출하는 장면도 지어낸 이야기다. 실제 폰 트랩 가족은 잘츠부르크에서 가까운 기차역까지 걸어가 이탈리아행 기차를 탔을 뿐이다. 이미 예정된 순회공연 계약이 있었고, 짐도 가볍게 챙겼다. 산길을 넘었다면 오히려 나치 독일 땅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노래도, 결말도, 두 번 지어낸 이야기였던 셈이다.
1969년 늦가을,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이 장면을 처음 봤다. 70mm 필름(일반 필름보다 폭이 넓어 화면이 더 크고 선명하게 나오는 상영 방식)으로 걸린 스크린은 국민학생이 올려다보기엔 아득할 만큼 컸다. 객석 어딘가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
기타를 든 손이 첫 소절에서부터 흔들리고, 아이들이 그 뒤를 이어받는 정적은 화면으로 직접 봐야 온전히 전해진다. 유튜브에 '사운드 오브 뮤직 에델바이스 1965'로 검색하면 이 장면을 오리지널 필름으로 다시 볼 수 있다.
위 플레이어가 재생되지 않으면 아래 버튼으로 들을 수 있다.
음원 출처: Spotify 공식 플레이어 — Bill Lee, '에델바이스' (The Sound Of Music, 1965)
라 마르세예즈와 다른 점
노래로 저항을 드러내는 장면은 이 영화만의 것이 아니다. 카사블랑카(1942)에서도 술집 손님들이 독일 군가에 맞서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부른다. 다만 그 노래는 실재하는 국가였다. 에델바이스는 반대로, 실재하지 않는 노래를 실재했던 것처럼 들리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도 관객은 두 장면에서 비슷한 무게의 울림을 느낀다. 진짜 국가가 아니어도, 잘 지어진 왈츠 한 곡이 국가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오래된 LP로 들을 때와 스트리밍으로 들을 때, 이 곡의 무게는 신기하게도 달라지지 않았다.
같은 영화 안에서도 대비는 뚜렷하다. 도레미와 마이 페이버릿 씽즈가 아이들과 함께 밝고 경쾌하게 흘러가는 넘버라면, 에델바이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낮은 목소리로만 불린다. 한 편의 뮤지컬 영화 안에 이렇게 무거운 정적을 담은 곡이 하나쯤 있다는 것도, 다시 보고서야 알아챈 부분이다.
60년 넘게 잊히지 않는 이유
1965년 영화가 개봉한 뒤 이 곡은 사실상 오스트리아의 두 번째 국가처럼 취급받았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오스트리아 대사가 입장할 때, 해병대 군악대가 이 곡을 연주한 일도 있었다. 정작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이 노래를 알게 된 건 영화가 인기를 얻은 뒤였다고 한다.
은퇴하고 나서 유튜브로 옛 영화들을 다시 챙겨 보는 요즘도, 이 노래가 나오는 장면만은 넘기지 않고 끝까지 본다. 몇 해 전에는 한 뮤지컬 배우가 부른 새 버전이 화제가 됐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민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이 곡을 향한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걸 알고서야, 그 이야기를 지어낸 두 사람의 마음이 더 궁금해졌다.
국민학교 음악 교과서가 이 곡을 오스트리아 민요라고 적어 놓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정체를 몰라도 충분히 진짜처럼 들렸으니까. 지금도 누군가는 이 곡을 부르며 여전히 민요라고 믿고 있을지 모른다. 그 오해마저도, 이 노래가 그만큼 잘 지어졌다는 증거로 남는다.
산 넘기 전 세 줄로
오스트리아 민요가 아니라 창작곡이었다
에델바이스는 오스트리아에 전해 내려오던 노래가 아니다. 1959년 브로드웨이 무대를 위해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가 새로 쓴 곡이다.
산을 넘은 결말도 지어낸 이야기였다
영화 속 극적인 탈출 장면과 달리, 실제 폰 트랩 가족은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로 떠났다. 노래에 이어 결말까지 두 번 지어낸 이야기였다.
목소리도 폰 트랩 대령 것이 아니었다
성우 빌 리가 대신 부른 목소리처럼, 스크린 속 노래가 실제 배우의 것이 아닌 경우는 다른 영화에도 있다.
참고한 기록들
- Wikipedia, "Edelweiss (song)"
- IMDb, "The Sound of Music (1965) – Awards"
- 한국영상자료원(KOFA), "사운드 오브 뮤직" 상영 정보
핑계왕초
영화음악과 OST에 새겨진 시간을 기록합니다. 국민학교 시절 동네 이동식 극장에서 시작해 대한극장 70mm 스크린까지, 스크린 앞에서 자란 기억을 붙잡고 씁니다. 본 글의 자료는 2026.08.27 기준으로 확인했습니다.
빌린 목소리, 또 하나
스크린 속 노래가 배우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던 사례는 이 영화만이 아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빌린 또 다른 영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