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억의 영화 음악

마징가 제트, 한국 노래인 줄 알았던 이유

by 핑계왕초 2026. 6. 24.

마징가 제트(1972) 한국어 주제가. 노래방에서 목청껏 부르고 나서야, 이 곡이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가의 번안곡이라는 걸 알았다. 동요 작사가 윤석중이 가사를 썼고, 멜로디는 일본 작곡가 와타나베 츄메이가 만들었다. 코레아늄이라는 이름 뒤에 숨긴 것들을 살펴본다.

세 줄로 읽는 핵심

재패니움이 코레아늄이 된 시절의 이야기

일본 만화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설정까지 바꿨다. 핵심 소재 금속 이름 '재패니움'이 '코레아늄'으로 교체됐다. 노래와 로봇 이름 하나까지 한국식으로 덮어씌운 시절이었다.

윤석중이 새로 쓴 가사, 멜로디는 일본 것

한국 동요 작사의 대가 윤석중이 가사를 썼지만 멜로디는 일본 작곡가 와타나베 츄메이의 원곡이다. 일부 자료에는 작곡자가 한국 이름으로 표기되기도 했다.

한일전 응원가가 같은 멜로디였던 이유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후렴 구조 덕분에 축구 응원가로 번졌고, 한일전에서 양쪽이 같은 멜로디를 다른 가사로 동시에 부르는 묘한 장면이 벌어졌다.

참고한 기록들

  • • 마징가 Z(1972), 토에이 애니메이션 — 원작 나가이 고, 음악 와타나베 츄메이, 일본판 보컬 미즈키 이치로
  • • MBC 마징가 제트 한국 방영 (1975) — 한국어판 작사 윤석중, 보컬 김국환·민경옥
  • • Wikipedia, "Mazinger Z" 항목 (en.wikipedia.org)

마징가 제트 1972 한국 방영 코레아늄 번안 주제가 신문기사

마징가 제트 한국 방영 당시 코레아늄을 표기한 옛 자료 

목차

마징가 제트, 일본 만화라는 사실을 숨긴 까닭

마징가 Z는 나가이 고의 원작을 바탕으로 토에이 애니메이션이 제작해 1972년 일본에서 첫 방영된 슈퍼로봇 애니메이션이다. 총 92화로 만들어졌고, 거대 로봇이 등장하는 작품의 원형으로 꼽힌다.

한국에는 1970년대 중반 MBC를 통해 소개됐는데, 당시는 일본 대중문화를 검열하던 시기였다. 텔레비전에 일본 만화가 그대로 나올 수 없던 때라, 방영사는 작품 속 설정까지 손을 댔다. 핵심 소재인 가상 금속 '재패니움'은 '코레아늄'으로 바뀌었다. 일본판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대사에 등장하는 이름이 통째로 한국식으로 교체된 것이다.

주인공 로봇은 '쇠돌이'라는 친근한 별칭으로 불리며 자연스럽게 한국 이야기처럼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상당수의 한국 시청자는 이 작품을 한국에서 만든 만화영화로 알고 자랐다. 노래방에서 이 주제가를 부를 때 그 사실을 몰랐던 것도, 그 철저한 교체 작업 덕분이었다.

윤석중이 새로 쓴 한글 가사, 멜로디는 그대로

한국어판 주제가는 동요 작사가로 이름이 높은 윤석중이 가사를 새로 썼다. 윤석중은 한국 동요사에서 손꼽히는 인물로, 누구나 알 만한 동요 여러 편의 가사를 남긴 동시 작가이다. 그런 그가 만화영화 주제가에까지 손을 댔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만화영화 주제가가 단순한 부속물이 아니라 정식 창작물로 다뤄졌음을 보여준다. 부른 사람은 MBC 방영판 기준으로 김국환·민경옥으로 확인된다.

다만 멜로디 자체는 한국에서 새로 만든 곡이 아니다. 원곡은 일본 작곡가 와타나베 츄메이가 만들었고, 일본판은 미즈키 이치로가 불렀다. 한국어판은 그 멜로디에 윤석중의 새 가사를 얹은 번안곡인 셈이다. 그런데 일부 가사집 자료에는 작곡자가 한국 이름으로 표기돼 있다. 멜로디까지 한국에서 새로 만든 것처럼 보이게 한 셈인데, 이는 작품의 일본 국적 자체를 가리던 그 시절 분위기와 맞닿아 있는 표기였다.

'재패니움'을 '코레아늄'으로 바꾼 것과 같은 결의, 또 다른 흔적이다. 노래 한 곡에까지 출신을 가리려 한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게, 그 시절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아래는 그 멜로디의 원본, 일본판 원곡이다.

음원 출처: Spotify 공식 플레이어 — マジンガーZ (21st century ver.), Ichirou Mizuki (미즈키 이치로, 원곡 작곡 와타나베 츄메이)

응원가가 된 주제가, 한일전에서 드러난 원곡

실제로 이 노래는 축구 응원가로 쓰이기도 했다.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와 가사 구조가 응원가로 옮겨가기에 알맞았던 것이다. 경기장에서 다 함께 외치기 좋은 후렴 구조였으니, 따로 누가 정해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응원석에 퍼져나갔다. 문제는 한일전이었다. 한국 응원단이 이 노래를 부르자, 옆에 있던 일본인들이 익숙한 멜로디에 자기네 나라 가사로 따라 부르는 일이 벌어졌다. 같은 멜로디, 다른 가사로 양쪽이 동시에 노래를 부른 묘한 장면이었다.

흥미로운 건 이 곡이 일본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노래라는 점이다. 일본판 주제가를 부른 미즈키 이치로는 데뷔 초부터 말년까지 무대에서 이 곡을 불렀고, 50주년 기념 행사에서도 무대에 올랐다. 번안곡과 원곡이 각자의 나라에서 세대를 넘어 불려 온 셈인데, 그 사이에는 정작 누구의 멜로디인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한참 뒤늦게야 퍼진 묘한 시차가 있다.

작은아이 생일날 노래방에서 신나게 부를 때는 몰랐던 사정이다. 가사를 쓴 사람, 곡을 쓴 사람, 그리고 그 곡이 건너온 길까지 알고 나서 다시 부르면, 같은 후렴이라도 어딘가 다르게 들릴 것 같다. 이 노래를 불렀던 모두가 아마 그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그 모름이 한 세대를 같은 멜로디로 묶어두었다.

핑계왕초

영화음악과 OST에 새겨진 시간을 기록합니다. 노래방에서 목청껏 부른 뒤에야 이 노래의 사정을 알아버린 그날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본 글의 자료는 2026년 6월 24일 기준으로 확인했습니다.

이 영화도 추천해요

노래 한 곡에 숨겨진 사정을 알고 나서 다시 듣는 이야기, 다른 방식으로 펼쳐진 영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