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아이 생일날, 저녁을 먹고 노래방에 갔다. 마이크를 잡은 건 나였다. 골라 부른 노래가 마징가 제트였는데, 가사가 유독 마음에 들어서 그날 일이 오래 남았다. 거대한 로봇이 정의를 지키려 끝까지 싸운다는 내용을 목청껏 부르고 나니, 정작 이 노래가 어디서 온 건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일본 만화라는 사실을 숨기고 방영됐다는 것, 윤석중이 새로 쓴 가사 뒤에 번안곡이라는 사정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노래가 한일전 응원가로까지 번졌다가 원곡 논란을 일으켰다는 것까지.
마징가 제트, 일본 만화라는 사실을 숨긴 까닭
마징가 Z는 나가이 고의 원작을 바탕으로 토에이 애니메이션이 제작해 1972년 일본에서 첫 방영된 슈퍼로봇 애니메이션이다. 총 92화로 만들어졌고, 거대 로봇이 등장하는 작품의 원형으로 꼽힌다.
한국에는 1970년대 중반 MBC를 통해 소개됐는데, 당시는 일본 대중문화를 검열하던 시기였다. 텔레비전에 일본 만화가 그대로 나올 수 없던 때라, 방영사는 작품 속 설정까지 손을 댔다. 핵심 소재인 가상 금속 '재패니움'은 '코레아늄'으로 바뀌었다. 일본판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대사에 등장하는 이름이 통째로 한국식으로 교체된 것이다. 주인공 로봇의 이름도 익숙한 '쇠돌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자연스럽게 한국 이야기처럼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상당수의 한국 시청자는 이 작품을 한국에서 만든 만화영화로 알고 자랐고, 훗날 원작이 일본 만화라는 사실을 듣고서야 놀라는 경우도 많았다.

윤석중이 새로 쓴 한글 가사, 멜로디는 그대로
한국어판 주제가는 동요 작사가로 이름이 높은 윤석중이 가사를 새로 썼다. 윤석중은 한국 동요사에서 손꼽히는 인물로, 누구나 알 만한 동요 여러 편의 가사를 남긴 동시 작가이다. 그런 그가 만화영화 주제가에까지 손을 댔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만화영화 주제가가 단순한 부속물이 아니라 정식 창작물로 다뤄졌음을 보여준다. 부른 사람은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MBC 방영판 더빙 오프닝은 김국환·민경옥이 부른 것으로 확인된다.
다만 멜로디 자체는 한국에서 새로 만든 곡이 아니다. 원곡은 일본 작곡가 와타나베 츄메이가 만들었고, 일본판은 미즈키 이치로가 불렀다. 한국어판은 그 멜로디에 윤석중의 새 가사를 얹은 번안곡인 셈이다. 그런데 일부 가사집 자료에는 작곡자가 한국 이름으로 표기돼 있다. 멜로디까지 한국에서 새로 만든 것처럼 보이게 한 셈인데, 이는 작품의 일본 국적 자체를 가리던 그 시절 분위기와 맞닿아 있는 표기로 보인다. '재패니움'을 '코레아늄'으로 바꾼 것과 같은 결의, 또 다른 흔적이라 할 만하다. 노래 한 곡에까지 이렇게 출신을 가리려 한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게, 그 시절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응원가가 된 주제가, 한일전에서 드러난 원곡
실제로 이 노래는 축구 응원가로 쓰이기도 했다.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와 가사 구조가 응원가로 옮겨가기에 알맞았던 것이다. 경기장에서 다 함께 외치기 좋은 후렴 구조였으니, 따로 누가 정해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응원석에 퍼져나갔을 만하다. 문제는 한일전이었다. 한국 응원단이 이 노래를 부르자, 옆에 있던 일본인들이 익숙한 멜로디에 자기네 나라 가사로 따라 부르는 일이 벌어졌다. 같은 멜로디, 다른 가사로 양쪽이 동시에 노래를 부른 묘한 장면이었다.
흥미로운 건 이 곡이 일본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노래라는 점이다. 일본판 주제가를 부른 가수는 데뷔 초부터 말년까지 무대에서 이 곡을 불렀고, 50주년 기념 행사에서도 무대에 올랐다. 번안곡과 원곡이 각자의 나라에서 세대를 넘어 불려 온 셈인데, 그 사이에는 정작 누구의 멜로디인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한참 뒤늦게야 퍼진 묘한 시차가 있다. 노래방에서 신나게 부를 때는 몰랐던 사정이다. 가사를 쓴 사람, 곡을 쓴 사람, 그리고 그 곡이 건너온 길까지 알고 나서 다시 부르면, 같은 후렴이라도 어딘가 다르게 들릴 것 같다.
3줄 요약
- 마징가 제트는 일본 애니메이션이지만, 한국에서는 그 사실을 숨기고 방영됐다.
- 한국어판은 윤석중이 새로 쓴 가사일 뿐, 멜로디는 일본 작곡가 와타나베 츄메이의 원곡 그대로다.
- 그 친숙함 때문에 축구 응원가로 쓰였고, 한일전에서 원곡 논란까지 빚었다.
핑계 한 줄
노래는 핑계였고, 사실은 그날 신나게 불렀던 그 노래의 진짜 사정이 더 궁금했다.
FAQ
Q. 마징가 Z 한국어 주제가는 누가 불렀나요?
A. MBC 방영판 더빙 오프닝은 김국환·민경옥이 부른 것으로 확인된다. (단, 1976년 컴필레이션 음반 등 다른 녹음에서는 다른 가수가 부른 버전도 존재한다.)
Q. 한국어판 작곡가는 누구인가요?
A. 멜로디는 일본 작곡가 와타나베 츄메이의 원곡이다. 한국어판은 윤석중이 가사를 새로 쓴 번안곡으로, 작곡 자체가 한국에서 새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Q. 한일전 응원가 논란이 실제로 있었던 일인가요?
A. 사실이다. 한국 응원단이 부르던 노래에 일본인들이 자기네 가사로 따라 부르며, 같은 멜로디의 원곡이 일본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참고 출처
- 위키백과 — 마징가 Z 문서
- 나무위키 — 마징가 Z 문서, 김국환 문서
- OST 참고: 마징가 Z 한국 방영판 OP 주제가(김국환, 민경옥) — https://www.youtube.com/watch?v=A6bpdMDBbg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