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 멜버른 교외의 좁은 거실에서 인도 친구들이 흥겹게 튼 1994년 댄스곡 한 소절에 다섯 살 때 캘커타 기차역에서 길을 잃었던 남자가 갑자기 숨을 멈춘다. 영화 라이언은 바로 이 순간 흘러나오는 A. R. 라만의 우르바시 우르바시를 통해 잊었던 기억이 음악 한 곡으로 되살아나는 과정을 그린다. 인도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잘레비를 알아보는 순간 그는 콜카타 출신이라 둘러댔던 거짓이 들킨다. 이 장면 다음 영화는 더스틴 오할로란과 하우슈카가 짜낸 피아노 선율로 곧바로 그의 다섯 살 시절로 되돌아간다.
두 사람의 피아노가 그린 사루의 심리 지형
작곡가 더스틴 오할로란과 하우슈카는 라이언의 음악을 둘이 나눠 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만든다. 인도에 있는 어린 사루의 장면에는 하우슈카 특유의 변형 피아노가 깔린다. 줄 사이에 이물질을 끼운 건반은 두드릴 때마다 북소리 같기도 하고 현악기 같기도 한 낯선 음색을 낸다. 길거리에서 아이들을 붙잡아가는 장면에서 이 건반은 거의 타악기처럼 빠르고 짧게 끊어뜨린다. 음 하나하나가 뭉개진 채 반복되며 듣는 사람의 심장도 따라 빨리 뛴다. 작곡가는 이 장면을 가리켜 일부러 만든 공포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패닉이라고 설명했다.
기차 장면에 흐르는 현악 아르페지오(음을 하나씩 쪼개 빠르게 잇는 연주법)는 실제 기차 바퀴 소리를 따라 그린 음악이 아니다. 작곡가들은 이 곡을 사루의 안에서 차오르는 불안 그 자체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나는 이 장면을 다시 보면서 음악이 풍경보다 인물의 속을 더 정확히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호주로 건너간 뒤 장면에는 현악기 비중이 점점 늘어난다. 오할로란이 주로 쓰던 악기다. 같은 주제선율이 인도에서는 건반의 타격으로, 호주에서는 현의 떨림으로 변주되며 한 인물의 두 시간대를 하나의 멜로디로 이어 붙인다. 두 작곡가는 처음부터 화면을 인도 절반과 호주 절반으로 나누지 않고, 한 사람의 마음을 끝까지 따라가는 한 줄기 멜로디를 함께 만들었다고 말했다.
1994년 타밀 댄스곡이 호주 거실에 도착하기까지
A. R. 라만이 1994년 타밀 영화 Kaadhalan(국내 정식 개봉 표기 미확인)을 위해 쓴 우르바시 우르바시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에서 시작해 힌디어판으로도 다시 녹음되며 인도 전역의 댄스플로어를 휩쓴 곡이다. 라이언 속에서 이 곡이 흐르는 시점은 사루가 다섯 살이던 1986년이 아니라 그가 서른 살 무렵 호주에서 인도 출신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다. 같은 인도 음악이라도 영화 속 시간은 콜카타의 1980년대가 아니라 멜버른의 현재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작은 정보 하나를 들고 있다. 사루는 이 곡에 맞춰 웃고 떠드는 친구들 사이에서 잘레비라는 인도 디저트를 알아보고, 그 순간 자신이 콜카타 출신이라 둘러댄 거짓말이 무너진다. 한 곡의 흥겨운 리듬이 한 사람의 숨겨둔 정체성을 끌어올리는 장치로 쓰인 셈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곡의 생명력이 영화 밖에서도 이어진다는 점이다. 2014년 미국 가수 윌아이엠과 코디 와이즈는 같은 멜로디를 가져와 잇츠 마이 버스데이라는 곡으로 다시 만들었고 이 곡은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 타밀 영화음악 한 곡이 20년의 시차를 두고 두 번이나 국경을 넘은 셈이다. A. R. 라만 본인도 2008년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두 차례 받으며 인도 영화음악을 서구 시상식 무대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라이언이 그의 1994년 곡을 다시 꺼내든 것은, 한 명의 인도 작곡가가 자국 댄스음악에서 시작해 세계 영화음악의 중심으로 이동해 온 더 큰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수록곡 정리
| Never Give Up | 시아 | 영화를 위해 새로 쓴 곡, 엔드 크레딧 삽입 |
| 우르바시 우르바시 | A. R. 라만 | 1994년 타밀 영화 Kaadhalan 원곡 |
| Come Closer | 바피 라히리 | 1984년 영화 카삼 파이다 카르네 왈레 키 원곡 |
| 라이언 오리지널 스코어 | 더스틴 오할로란·하우슈카 | 프리페어드 피아노 중심,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 |
바피 라히리의 디스코 시대와 캘커타의 위험한 밤
거리의 아이를 데려가 도와주겠다던 여성 노르가 흥얼거리는 곡은 1984년 영화 카삼 파이다 카르네 왈레 키에 실린 컴 클로저다. 작곡가 바피 라히리는 인도에서 디스코킹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1980년대 인도 대중음악에 신스와 드럼머신을 본격적으로 들여온 인물이다. 노르가 콧노래로 부르는 이 디스코 선율은 장면의 표면을 가볍고 친근하게 만들지만 정작 노르의 목적은 어린 사루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데 있다.

1980년대 인도 도시에서 디스코 음악이 가난한 아이들을 노리는 인신매매 조직의 배경음으로 쓰였다는 사실은 화면 어디에도 설명되어 있지 않다. 영화는 그저 노르의 콧노래 하나로 그 시대 분위기와 위험을 동시에 건넨다. 흥겨운 멜로디와 끔찍한 의도 사이의 거리가 좁을수록 장면은 더 불편해진다. 같은 시기 인도 대중가요가 도시의 가난한 거리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로 흘러 다녔다는 점도 이 장면이 슬쩍 비추는 부분이다. 라이언은 이렇게 신나는 노래 한 곡 뒤에 가장 어두운 장면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디스코 시대 인도의 명암을 짧게 스친다.
3줄 요약
- 라이언의 음악은 더스틴 오할로란·하우슈카의 프리페어드 피아노로 사루의 심리를 그린다.
- A. R. 라만의 1994년 곡 우르바시 우르바시는 시간이 다른 두 장면을 잇는 정체성의 장치로 쓰인다.
- 바피 라히리의 디스코곡 컴 클로저는 1980년대 인도의 명과 암을 한 장면 안에 동시에 담는다.
핑계 한 줄
나는 라이언을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후반부 구글어스 장면보다 인도 친구들과의 저녁식사 장면에서 더 오래 멈춰 섰다. 흥겨운 댄스곡 한 곡이 거짓말 하나를 무너뜨리는 방식이 너무 정직해서였다. 다만 이렇게 좋은 노래를 위험한 장면의 배경으로 쓰는 연출이 늘 옳은 선택인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FAQ
Q. 우르바시 우르바시는 라이언을 위해 새로 만든 곡인가요?
A. 아니다. 1994년 타밀 영화 Kaadhalan의 원곡으로, 라이언에는 기존곡으로 삽입되었다.
Q. 라이언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누가 작곡했나요?
A. 더스틴 오할로란과 하우슈카(볼커 베르텔만)가 함께 작곡했으며, 제89회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올랐다.
Q. Never Give Up은 영화의 어느 장면에 쓰였나요?
A. 시아가 영화를 위해 새로 쓴 곡으로, 엔드 크레디트에 삽입되었다.
참고 출처
- 위키백과·라이언 (2016년 영화)(https://ko.wikipedia.org/wiki/라이언_(2016년_영화))
- Wikipedia·Lion (soundtrack)(https://en.wikipedia.org/wiki/Lion_(soundtrack))
- Wikipedia·Urvasi Urvasi(https://en.wikipedia.org/wiki/Urvasi_Urva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