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8년 어느 라디오 부스 안, 스물두 살 의대생이 그리스 여가수의 레코드판을 받아 들고 멈춰 섰다. PD가 건넨 그 한 장의 음반에서 영화 〈쎄시봉〉의 진짜 주인공이라 할 노래, '하얀 손수건'이 시작됐다.
영화는 무교동 음악감상실 '세시봉'을 배경으로 가상의 인물 오근태를 더해 첫사랑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정작 시대를 뒤흔든 건 스크린 밖 실제 듀오 트윈폴리오가 라디오 한 곡으로 통기타 붐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영화가 멜로물의 결을 따라가는 동안, 실제 역사는 라디오 부스와 음반 자료실, 그리고 방송 규정이라는 훨씬 건조한 공간에서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가상과 실화가 겹치는 지점을 하나씩 짚어가 보면, 무교동의 작은 음악감상실 간판 하나가 어떻게 한 세대의 청년문화 전체를 끌어올렸는지가 보인다.
라디오 부스에서 태어난 '하얀 손수건'
영화 속에서는 쎄시봉 사장이 직접 트리오 결성을 제안하지만, 실제로는 송창식이 세시봉 무대에 서던 윤형주와 이익균을 눈여겨보고 먼저 제안한 쪽이었다. 1967년 가을 결성된 '세시봉 트리오'는 곧 이익균의 군 입대로 흔들렸고, 담당 PD 임성기는 해체 대신 둘만 남은 송창식과 윤형주에게 듀엣을 권했다. 그렇게 '트윈폴리오'라는 이름이 붙었다.
진짜 전환점은 TBC 라디오 '브라보 선데이'였다. 패티 김, 이미자, 남진 같은 기라성 가수들 사이에서 트윈폴리오는 햇병아리에 가까운 신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호 PD가 음반 자료실로 둘을 데려가 그리스 가수 나나 무스쿠리의 'Me T'Aspro Mou Mantili'를 틀어주며 "이 노래를 불러보라"라고 했고, 송창식이 그 자리에서 가사를 번안했다. 완성된 곡이 '하얀 손수건'이다.
1968년 12월 23일 남산 드라마센터 첫 리사이틀에서 이 노래가 울리자 10대 소녀 팬들이 손수건을 흔들며 따라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음 해 같은 자리에서 열린 고별 무대에서는 윤형주가 해체를 알리던 도중 둘이 끝내 끌어안고 울어 객석 전체가 울음바다가 됐고, 팬들이 가장 많이 들고 온 선물도 손수건이었다. 영화가 그려낸 첫사랑의 떨림보다, 이 한 곡이 실제로 만들어 낸 객석의 풍경이 오히려 더 영화 같았다.
영화는 이 시절의 소리를 재현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27곡에 이르는 삽입곡 대부분이 기존 발표곡이라 저작권료만 6억 원이 들었고, 강하늘과 조복래의 가창은 윤형주와 송창식 특유의 발성·화음과 닮았다는 평을 들으며 트윈폴리오의 하모니를 스크린에 되살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저작권료를 내지 않은 단 한 곡 '백일몽'만이 미국 민요 '할아버지의 시계'를 바탕으로 감독이 직접 가사를 새로 쓴 창작곡이었다.
번안가요 규정이 만든 통기타 붐
'하얀 손수건'을 단순한 번안곡으로만 보면 시대를 놓친다. 당시 한국 방송에는 외국 노래를 내보낼 때 가사의 절반 이상을 한국어로 불러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외국곡을 원어 그대로 틀 수 없으니 가수가 직접 우리말 가사를 새로 써야 했고, 이 제약이 거꾸로 트윈폴리오 같은 번안가요 전문 듀오를 키워낸 토양이 됐다. 그리스어 원곡이 교회에서 연인을 기다리는 신앙적 정서를 담았다면, 송창식이 새로 쓴 우리말 가사는 이별을 고백하는 손수건 한 장의 이야기로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같은 선율을 입은 두 언어가, 완전히 다른 노래를 만들어 냈다.
이 무렵 무교동의 음악감상실 세시봉은 입장료 한 장으로 최신 팝송을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청바지와 통기타로 상징되던 청년문화세대가 모여들었고, 송창식·윤형주·조영남·이장희·김세환이 차례로 이곳 무대를 거쳐 갔다. 윤형주는 훗날 연재한 회고담에서 자신의 통기타 인생이 1966년 연세대 의대 입학 기념으로 아버지를 졸라 산 기타 한 대에서 시작됐다고 적었다. 1969년 트윈폴리오가 정식 데뷔 음반을 내고 한대수가 창작곡으로 무대에 선 그해가, 통기타 음악이 변방의 유행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시점으로 기록된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트윈폴리오 자신들도 이 데뷔 음반의 존재를 한참 뒤에야 알았다는 사실이다. 1969년 지구레코드에서 나온 음반에는 조영남의 '고향의 푸른 잔디'에 코러스로 참여한 트랙까지 실렸지만, 음반사가 발매 여부를 따로 알리지 않은 탓에 두 사람은 한동안 자신들의 정식 데뷔작이 시장에 나와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냈다고 한다. 가수가 자기 데뷔작의 존재를 모르고 한 시절을 보냈다는 이야기인데, 음반 시장의 허술한 관행이 오히려 한국 포크 음악사의 작은 미스터리 하나를 남긴 경우다.
무교동 간판이 남긴 것
트윈폴리오는 1969년 12월, 같은 드라마센터에서 고별 리사이틀을 열고 해체했다. 활동 기간은 1년 10개월에 불과했지만 '하얀 손수건'은 라디오 전파를 타고 계속 흘렀고, 해체 소식이 전해진 지 2주도 지나지 않아 두 방송사에서 고별 공연 실황이 다섯 차례나 재방송됐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실제 활동 기간보다 훨씬 오래 무대에 섰던 팀으로 남은 이유다. 1년 10개월짜리 활동이 반세기 넘게 회자되는 일은, 통기타 한 대와 라디오 전파만으로도 한 시대의 정서를 움직일 수 있었던 그 시절 청년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해체 이후 송창식과 윤형주는 각자 싱어송라이터로 독립했다. 송창식은 '고래사냥', '담배가게 아가씨' 같은 자작곡으로, 윤형주는 '우리들의 이야기', '조개껍질 묶어'로 번안가요 듀오 시절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세시봉을 거쳐 간 조영남, 이장희, 김세환까지 더하면 무교동의 작은 음악감상실 하나가 1970년대 한국 포크 음악의 주요 줄기 전체를 키워낸 셈이 된다. 음악감상실이라는 공간, 번안가요 규정이라는 제약, 그리고 라디오 부스에서의 우연한 한순간이 겹쳐, 한 세대가 통기타를 잡게 만들었다.
- 트윈폴리오의 '하얀 손수건'은 라디오 PD가 건넨 그리스 가요를 즉석에서 번안한 곡이었다.
- 외국곡 50% 한국어 가사 규정이 번안가요 전문 듀오를 키운 배경이 됐다.
- 음악감상실 세시봉 하나가 1960년대 통기타 붐의 출발점이 됐다.
핑계 한 줄
신입사원 연수회 마지막 날 노래자랑 무대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던 '아침이슬', 세시봉의 무대와는 다른 시대, 다른 노래지만 우연히 그 곡을 다시 들으면 그날의 강당 조명까지 함께 돌아온다.
FAQ
Q. 영화 〈쎄시봉〉의 오근태는 실제 인물인가요?
A. 실제 모델은 트윈폴리오 결성 직전 군 입대로 멤버가 되지 못한 이익균으로 알려져 있으며, 영화 속 연애 서사는 창작된 설정입니다.
Q. '하얀 손수건'은 원래 외국 노래인가요?
A. 그리스 가수 나나 무스쿠리의 'Me T'Aspro Mou Mantili'를 송창식이 우리말로 번안한 곡입니다.
Q. 트윈폴리오는 왜 이렇게 짧게 활동했나요?
A. 1968년 결성해 1969년 12월 고별 리사이틀로 해체했으며, 활동 기간은 1년 10개월에 불과했습니다.
참고 출처
- 위키백과, 쎄시봉(영화) [CC BY-SA]
- 나무위키, 세시봉 / 쎄시봉(영화) [CC BY-NC-SA]
- 조선일보, 윤형주 칼럼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
- 벅스, 아침이슬/김민기 (공식 음원 스트리밍)
- CJ엔터테인먼트, '쎄시봉' 티저 예고편 (2014.12.23 공개, 배급사 공식 업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