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서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왜 불러'가 어떻게 금지곡이 되었는지, 유신 시대 청년문화의 사운드트랙을 음악 비평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다.
영화가 끝나도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바보들의 행진> 속 두 곡, '왜 불러'와 '고래사냥'은 스크린을 벗어나 대학가 시위 현장으로, 막걸릿집 좁은 골목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전 검열 당국의 가위질을 만났다. 한 영화의 음악이 어떻게 시대의 증거물이 되었는지, 그 경로를 따라가 본다.

도망치는 장면에 깔린 노래, '왜 불러'
송창식은 '왜 불러'를 병태가 입영을 위해 영자를 떠나는 이별 장면에 쓰기 위해 작사하고 작곡했다. 그러나 하길종 감독은 편집 단계에서 이 곡을 병태와 영철이 장발 단속 경찰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에 옮겨 붙였다. 작곡자의 의도와 감독의 편집이 충돌한 자리에서 곡의 의미는 다시 태어났다. 단속을 피해 달리는 두 청년의 발걸음과 맞물린 멜로디는 더 이상 사랑의 작별가가 아니라 도주와 저항의 리듬으로 들렸다. 1975년은 유신헌법 개정과 긴급조치 9호가 잇따라 발동된 해였고, 거리에는 장발 단속이 일상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그런 풍경 속에서 청년들은 이 노래를 자신들의 목소리로 받아들였고, '왜 불러'는 결국 공륜의 금지곡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감독의 한 번의 편집 선택이 노래 한 곡의 운명과, 그 노래를 듣던 세대의 정서까지 함께 바꾸어 놓은 셈이다. 작곡 의도와 실제 쓰임 사이의 거리가 오히려 그 시대를 증언하는 자료가 된다.
영철의 죽음과 '고래사냥'
'고래사냥'은 영화 속 인물 영철의 테마곡으로 쓰였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영철이 자전거를 탄 채 동해 바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장면에 이 노래가 흐른다. 가사 속 예쁜 고래 한 마리는 청년들이 끝내 잡지 못한 어떤 대상에 대한 은유로 읽혔고, 노래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빠르게 퍼져나갔다. 대학가 시위 현장에서 청년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되자 검열 당국은 이 곡 역시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이후 '고래사냥'은 야구장 응원가로,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로, 세대를 건너 계속 변주되며 살아남았다. 한 편의 영화 음악이 검열 권력과 정면으로 충돌하고도 끝내 대중의 기억 속에 남은 드문 사례다. 금지곡이라는 낙인이 오히려 곡의 생명을 연장시킨 역설이 여기에 있다.
15분이 잘려나간 자리
<바보들의 행진>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네 차례 사전검열을 거쳤고, 완성된 필름에서도 다섯 장면이 삭제되고 네 장면이 단축되었다. 117분으로 기획된 상영시간은 102분으로 줄었으며, 잘려나간 15분은 끝내 복원되지 못했다. 그러나 음악은 영화보다 더 멀리 갔다. 두 곡 모두 금지곡으로 묶였지만, 금지라는 조치가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의 입에 노래를 올렸다. 영화를 만든 하길종 감독은 이후로도 거듭된 검열과 흥행 부진을 겪다가 1979년 서른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 한국영상자료원의 복원판으로 다시 보면, 잘려나간 장면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결국 그 시절 사람들이 함께 부르고 기억했던 노래들이다. 음악이 검열을 비켜가며 시대의 기록을 대신 떠안은 사례로, 이 영화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호출되고 있다. 잘린 필름은 멈췄지만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FAQ
Q. '왜 불러'와 '고래사냥'은 왜 금지곡이 되었나요?
A. 두 곡 모두 대학가 시위 현장에서 즐겨 불리면서 저항적인 노래로 인식되었고, 한국공연윤리위원회에 의해 금지곡으로 지정되었습니다.
Q. 영화 <고래사냥>(1984)과 같은 작품인가요?
A. 아닙니다. 동명의 노래 제목 때문에 혼동되는 경우가 많지만, <바보들의 행진>(1975)과 배창호 감독의 영화 <고래사냥>(1984)은 서로 다른 작품입니다.
Q. 현재 <바보들의 행진>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A.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복원판 블루레이를 발매했으며, 공식 유튜브 채널에도 업로드되어 있습니다.
참고 자료
- 나무위키, 바보들의 행진 — https://namu.wiki/w/바보들의%20행진
- 나무위키, 고래사냥(가요) — https://namu.wiki/w/고래사냥(가요)
- 씨네21, 영화 [바보들의 행진] 상세정보 —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2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