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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비하인드

바보들의 행진, 금지곡이 된 왜 불러

by 핑계왕초 2026. 6. 22.

바보들의 행진(1975) OST. 주제가 '왜 불러'와 영철의 테마곡 '고래사냥'은 개봉과 동시에 금지곡이 됐다. 이별가로 쓰인 곡이 도피와 저항의 노래로 다시 태어난 사연, 그리고 유신 시대 검열이 두 곡을 오히려 더 오래 살아남게 만든 역설을 오늘 다시 들여다본다.

바보들의 행진 1975 영화 포스터, 서울 시가지와 산

바보들의 행진 영화 포스터 재현 이미지

목차
  1. 도망치는 장면에 깔린 노래, '왜 불러'
  2. 영철의 죽음과 '고래사냥'
  3. 15분이 잘려나간 자리

도망치는 장면에 깔린 노래, '왜 불러'

송창식은 '왜 불러'를 병태가 입영을 위해 영자를 떠나는 이별 장면에 쓰기 위해 작사하고 작곡했다. 그러나 하길종 감독은 편집 단계에서 이 곡을 병태와 영철이 장발 단속 경찰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에 옮겨 붙였다. 작곡자의 의도와 감독의 편집이 충돌한 자리에서 곡의 의미는 다시 태어났다.

단속을 피해 달리는 두 청년의 발걸음과 맞물린 멜로디는 더 이상 사랑의 작별가가 아니라 도주와 저항의 리듬으로 들렸다. 1975년은 유신헌법 개정과 긴급조치 9호가 잇따라 발동된 해였고, 거리에는 장발 단속이 일상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그런 풍경 속에서 청년들은 이 노래를 자신들의 목소리로 받아들였고, '왜 불러'는 결국 공륜의 금지곡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감독의 한 번의 편집 선택이 노래 한 곡의 운명과, 그 노래를 듣던 세대의 정서까지 함께 바꾸어 놓은 셈이다. 작곡 의도와 실제 쓰임 사이의 거리가 오히려 그 시대를 증언하는 자료가 된다. 하길종 감독은 미국 유학 시절 영화 이론을 접하고 돌아온 뉴웨이브 감독군의 대표 격이었다. 최인호의 동명 원작 소설을 각색하면서, 그는 검열 통과를 노린 명랑 청춘물의 외피 안에 시대의 억압을 그대로 심어 넣었다. 그 이중 구조가 이 영화를 단순한 하이틴 코미디가 아니라 시대극으로 남게 만든 이유다.

위 플레이어가 재생되지 않으면 아래 버튼으로 들을 수 있다.

Spotify에서 듣기 — 왜 불러

음원 출처: Spotify 공식 플레이어 — 송창식, '왜 불러' (골든 제2집, 1975)

영철의 죽음과 '고래사냥'

'고래사냥'은 영화 속 인물 영철의 테마곡으로 쓰였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영철이 자전거를 탄 채 동해 바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장면에 이 노래가 흐른다. 가사 속 예쁜 고래 한 마리는 청년들이 끝내 잡지 못한 어떤 대상에 대한 은유로 읽혔고, 노래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빠르게 퍼져나갔다.

대학가 시위 현장에서 청년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되자 검열 당국은 이 곡 역시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이후 '고래사냥'은 야구장 응원가로,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로, 세대를 건너 계속 변주되며 살아남았다.

한 편의 영화 음악이 검열 권력과 정면으로 충돌하고도 끝내 대중의 기억 속에 남은 드문 사례다. 금지곡이라는 낙인이 오히려 곡의 생명을 연장시킨 역설이 여기에 있다. 실제로 이 곡은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해금되면서 각종 방송과 콘서트에서 다시 불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원래의 저항적 맥락을 모르는 세대에게도 그저 애창곡으로 소비된다. 검열이 남긴 낙인이 세월과 함께 흐려지고, 곡 자체의 멜로디만 남아 다음 세대로 건너간 셈이다.

15분이 잘려나간 자리

바보들의 행진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네 차례 사전검열을 거쳤고, 완성된 필름에서도 검열의 손길을 피하지 못했다. 잘려나간 시간은 영화보다 오래, 음악은 그보다 더 멀리 갔다.

영화를 만든 하길종 감독은 이후로도 거듭된 검열과 흥행 부진을 겪다가 1979년 서른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 한국영상자료원의 복원판으로 다시 보면, 잘려나간 장면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결국 그 시절 사람들이 함께 부르고 기억했던 노래들이다. 잘린 필름은 멈췄지만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검열 조치 내용
사전검열 횟수 4회
완성 필름 삭제 5개 장면
완성 필름 단축 4개 장면
검열 전 공식 상영시간 117분
현재 남은 상영시간 102분 (15분 손실, 복원 불가)

바보들의 행진 검열 조치 요약

이 영화가 개봉한 1975년, 유신 정권의 문화 검열은 영화만이 아니라 대중가요 전반을 겨냥하고 있었다. 같은 해 공륜은 대마초 파동과 맞물려 수백 곡의 가요를 한꺼번에 금지곡으로 묶었는데, '왜 불러'와 '고래사냥'도 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두 곡의 금지 사유는 표면적으로는 풍기문란이었지만, 실제로는 청년 문화가 만들어내는 정서적 결속 자체를 통제하려는 시도에 가까웠다. 검열이 영화를 조각냈지만, 음악은 오히려 검열의 손이 닿지 않는 구전과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더 멀리 퍼져나갔다.

금지곡의 역설, 세 줄로

왜 불러는 원래 이별 노래로 쓰인 곡이다

송창식은 병태와 영자의 이별 장면을 위해 이 곡을 썼지만, 감독은 편집 단계에서 장발 단속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으로 옮겨 붙였다.

고래사냥은 영철의 죽음과 함께 퍼졌다

동해 벼랑 위에서 자전거를 탄 채 떨어지는 장면에 삽입된 이 곡은 이후 대학가 시위 현장에서 불리며 금지곡이 됐다.

검열 전 117분이던 영화는 102분 남았다

다섯 장면 삭제, 네 장면 단축을 거치며 15분은 끝내 복원되지 못했지만, 두 곡은 영화보다 더 멀리 살아남았다.

참고한 기록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바보들의 행진" 항목 (encykorea.aks.ac.kr) — 검열 삭제 장면과 흥행 기록 포함
  • KMDb 한국영상자료원, "바보들의 행진" 데이터베이스 (kmdb.or.kr) — 공식 상영시간·크레딧 기록
  • 씨네21, 영화 [바보들의 행진] 상세정보 (cine21.com) — 잘려나간 장면 목록

핑계왕초

영화음악과 OST에 새겨진 시간을 기록합니다. 본 글의 자료는 2026.6.22. 기준으로 확인했습니다.

이 역설이 궁금하다면

금지곡이 오히려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이 된 사례를 하나 더 짚었다. 다른 화면, 다른 방식으로 억눌린 소리가 새어 나온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