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음악 비하인드

찬실이는 복도 많지, 엔딩곡을 부른 사람

by 핑계왕초 2026. 9. 5.

유튜브로 다시 본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뒤, 입소문만으로 관객을 서서히 늘려간 작품이다. 엔딩곡 제목도 영화 제목과 똑같이 '찬실이는 복도 많지'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뜻밖에도 경기민요(서울·경기 전통 민요) 소리꾼이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20 엔딩곡 이희문 정중엽 달동네 이사 장면

짐을 부린 자리에도 저녁은 온다

목차
  1. 엔딩곡 제목이 영화와 겹친 사연
  2. 엔딩 장면, 노래가 없었다면
  3. 여느 엔딩곡과는 다른 목소리
  4. 몇 해가 지나도 다시 찾는 이유

엔딩곡 제목이 영화와 겹친 사연

감독 김초희는 단편 〈겨울의 피아니스트〉, 〈우리순이〉, 〈산나물처녀〉로 이름을 알리기 전, 오랫동안 홍상수 감독의 영화 프로듀서로 일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그가 처음 메가폰을 잡은 장편이다. 엔딩곡 가사는 김초희 감독이 직접 썼다. 편곡은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베이시스트 정중엽이 맡았는데, 영화 음악감독으로는 이 작품이 첫 도전이었다. 노래를 부른 사람은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이다. 엔딩곡은 새로 작곡한 곡이 아니라, 경기민요 〈사설방아타령〉을 영화 분위기에 맞게 편곡한 곡이다. 김초희 감독은 무용가 안은미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뒤풀이 자리에서 우연히 이희문과 마주쳤고, 그 자리에서 엔딩곡 참여를 제안했다고 한다. 시나리오도, 촬영 계획도 아닌 술자리에서 캐스팅이 정해진 셈이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건, 노래 제목이 영화 제목과 똑같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려서였다.

영상 출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엔딩곡 공식 뮤직비디오

엔딩 장면, 노래가 없었다면

영화는 오래 함께 일하던 감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마흔한 살 프로듀서 찬실이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는 이야기다. 집도 돈도 없이 서울의 한 달동네로 이사한 찬실은 가사도우미로 생계를 잇는다. 그러다 집주인 할머니와 프랑스어 강사, 자신을 장국영이라 우기는 정체불명의 손님까지 만난다. 영화는 결말에서 찬실이 취직도 미래도 정하지 않은 채 그저 하루하루를 걸어가는 모습으로 끝난다. 이 장면에 엔딩곡이 얹힌다. 정중엽과 김초희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가장 공을 들인 대목이 바로 이 엔딩곡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노래 없이 자막만 올라갔다면 이 결말은 그냥 정리 안 된 이야기로 남았을 것이다. 이희문 특유의 흥과 위로가 담긴 목소리가 깔리면서, 정리되지 않은 삶도 그 자체로 괜찮다는 느낌을 준다.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볼륨을 높였다.

여느 엔딩곡과는 다른 목소리

2020년 전후 한국 독립영화의 엔딩곡은 대체로 어쿠스틱 기타나 피아노 위주의 싱어송라이터 발라드였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다른 길을 택했다. 아예 새 곡을 쓰는 대신, 경기민요 〈사설방아타령〉이라는 옛 가락을 통째로 가져와 편곡했다. 이희문은 '국악계의 이단아'로 불리며 경기민요를 록·펑크·힙합과 뒤섞어온 소리꾼이다. 그가 몸담았던 민요 록밴드 씽씽은 2017년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초청되며 해외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이런 이력의 목소리가 잔잔한 인디영화의 엔딩곡에 얹히자, 곡은 위로 발라드가 아니라 구성진 가락에 가까워졌다. 처음 들었을 땐 솔직히 조금 어색했다. 두세 번 다시 듣고 나서야, 이 뻔뻔할 정도의 흥이 오히려 찬실의 씩씩함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무대 의상과 짙은 화장으로 방송에 나오던 이희문의 이미지를 알던 입장에서는, 조용한 인디영화 엔딩곡에서 그의 목소리를 만난 것 자체가 낯선 경험이었다.

몇 해가 지나도 다시 찾는 이유

영화는 개봉 당시 관객 수 기준으로는 크지 않았다. 해외 박스오피스 집계로도 흥행 수익 자체는 소박한 수준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상은 적지 않게 받았다.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CGV아트하우스상·KBS독립영화상을 받았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받았다. 주연 강말금은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과 부일영화상 등 여러 시상식에서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정중엽은 이후 퓨전 국악 밴드 이날치의 베이시스트로도 활동하며 넷플릭스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 음악 작업에 참여했고, 이희문은 지금도 국악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해외 평단에서도 이 영화를 두고, 자기 인용이 많은 구성이지만 평생 영화 일에 매달리다 결혼과 출산을 미뤄둔 주인공의 실존적 쓸쓸함이 이야기를 붙잡아준다는 평가가 나왔다. 마흔 언저리에 일자리를 잃고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는 시대를 타지 않는다. 은퇴 이후 영화를 유튜브로 챙겨 보는 입장에서도, 이 엔딩곡은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 재생목록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세 줄로 읽는 핵심

영화 제목을 그대로 노래 제목으로 썼다

김초희 감독이 가사를 쓰고 정중엽이 편곡한 엔딩곡은 영화와 이름이 같다. 흔치 않은 선택이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옛 민요 한 가락을 편곡해 엔딩곡을 만들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정중엽에게는 이 영화가 첫 음악감독작이었다. 경기민요 〈사설방아타령〉을 가져와 편곡했다.

낯선 목소리 하나로도 위로는 충분했다

국악계의 이단아라 불리는 이희문의 창법은 인디영화 엔딩곡치고 이례적이었다. 그 낯섦이 오히려 찬실의 씩씩함과 겹쳐 들린다.

참고한 기록들

  • Wikipedia(영문) — 《Lucky Chan-sil》 항목, 개봉일·수상 내역·크레딧
  • KMDb(한국영상자료원) — 《찬실이는 복도 많지》 작품 정보
  • IMDb — 《Lucky Chan-sil》(2019) 캐스트·크레딧

핑계왕초

영화음악과 OST에 새겨진 시간을 기록합니다. 요즘은 극장보다 유튜브 쪽이 더 익숙합니다. 본 글의 자료는 2026.09.05 기준으로 확인했습니다.

이 영화에는 자신을 왕년의 배우 장국영이라 우기는 유령 같은 손님이 등장한다. 정작 그 이름의 진짜 주인이 거울 앞에서 홀로 춤추던 장면의 음악 이야기를 얼마 전에 써둔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