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멘터리 영화 '괜찮아, 앨리스'는 2024년 11월 13일 한국에서 개봉했다. 감독은 양지혜, 오마이뉴스가 제작했다. 무대는 인천 강화도에 있는 1년제 대안학교 '꿈틀리인생학교'다. 입시 경쟁과 부모와의 갈등으로 지친 청소년들이 1년 동안 학교를 떠나 스스로의 속도를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음악은 대부분 아이들이 직접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는 장면 안에서 흘러나온다. 시대: 2024년 개봉, 무대는 인천 강화도 꿈틀리인생학교
- 감독: 양지혜, 오랜 방송 구성작가 경력 끝에 연출한 첫 장편
- 등장인물: 입시 경쟁과 또래 갈등에 지친 청소년들
- 설립자: 오연호, 덴마크 에프터스콜레를 본떠 학교를 만듦
- 갈등: 성적 압박, 부모와의 소통 단절, 교우관계의 어려움
- 활동: 농사, 빨래와 끼니 짓기, 악기 연습, 공동생활을 통한 자기 탐색
- 결말: 1년 후 아이들이 스스로 다음 길을 선택함
멈춤, 1년이 만든 아이들의 변화
아이들은 처음 학교에 도착해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시계를 자주 본다. 다음 일정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아이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화면은 이 어색한 침묵을 가만히 비춘다. 농사일을 거들고, 빨래를 직접 널고, 끼니를 손으로 짓는 동안 손에 흙이 묻고 옷에 얼룩이 남는다. 설명 대신 이런 장면들이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아이들의 표정 변화를 계절별로 따라간다. 봄에는 시선이 아래로 향했던 아이가, 가을이 되면 또래와 눈을 맞추고 웃는다. 큰 사건은 없다. 다만 매일 반복되는 노동과 대화가 조금씩 쌓인다. 한 아이는 처음엔 묻는 말에 단답으로만 답한다. 시간이 지나며 스스로 먼저 말을 건넨다. 이 변화는 설명이 아니라 식탁에 앉은 자세, 친구를 바라보는 시선, 웃는 빈도로만 드러난다. 1년이라는 시간이 아이를 어떻게 바꾸는지, 영화는 결과만 말하지 않고 그 과정의 결을 하나씩 쌓아 보여준다. 밤마다 일기를 쓰던 아이도 있다. 처음 몇 장은 짧은 문장 한 줄로 끝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장 수가 늘어나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 넣는다.
음악, 아이들이 직접 연주한 위로
아이들은 학교에서 처음 악기를 손에 쥔다. 손가락이 자꾸 엉킨다. 소리는 자주 끊긴다. 이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은 화면 밖 배경음이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켜는 소리 그 자체다. 이런 디지텍 음원은 연출된 감정이 아니라 실제 연습 과정의 거친 결을 그대로 들려준다. 서툰 합주가 점점 맞아갈 때, 영상은 음을 맞추는 그 순간의 표정을 가까이서 잡는다. 음악은 인물의 내면을 대신 말해주는 장치로 쓰인다. 잘하지 못해도 함께 소리를 낸다는 사실 자체가 위로가 된다. 다큐멘터리 특성상 별도로 작곡된 배경음악도 군데군데 깔리지만, 이 영화의 음악감독이나 구체적인 삽입곡명은 공식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곡명을 임의로 적지 않는다. 확인된 사실은 음악이 대부분 아이들의 실제 연주 장면 안에서 발생한다는 점, 그리고 그 소리가 잘 맞지 않을 때도 편집에서 다듬지 않고 그대로 둔다는 점이다. 완성된 연주보다 서툰 합주를 그대로 들려주는 선택, 그것이 이 영화가 음악을 다루는 방식이다. 한 아이가 처음으로 한 곡을 끝까지 연주해 내는 장면에서, 주변 친구들이 손뼉을 친다. 그 박수 소리도 화면 안에서 그대로 들려오는 또 다른 음원이다.
기다림, 부모가 내려놓아야 할 불안
한 아이는 미래의 행복을 미루지 않고 싶다는 뜻을 자기 말로 풀어낸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부모의 얼굴이 화면에 잡힌다. 표정은 복잡하다. 이해와 당혹이 함께 섞여 있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어떤 설명도 덧붙이지 않는다. 부모 인터뷰에서는 성적표를 손에 쥐고 아이를 다그쳤던 지난 시간이 짧게 회상된다. 말투는 차분하지만 손은 종종 떨린다. 아이가 학교에서 보내는 사계절이 흐르는 동안, 부모의 인터뷰 분량도 조금씩 늘어난다. 처음엔 우려가 앞서던 말이, 나중에는 아이의 속도를 인정하는 말로 바뀐다. 큰 화해의 장면은 없다. 다만 함께 밥을 먹는 장면에서 대화가 길어진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내 아이에게 던졌던 질문들을 다시 떠올렸다. 성적을 먼저 묻던 습관, 학원 버스 시간을 챙기던 손짓.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주는 일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는 것을, 화면 속 부모들의 표정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