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트베르펜 대성당 문이 열리던 그 밤, 소년을 울린 건 캔버스가 아니라 선율이었다. 플란더스의 개 마지막 회, 루벤스 명화 앞에 흐른 슈베르트 아베 마리아는 그림보다 먼저 소년의 마지막 숨을 받아냈다.
이 마지막 회는 1975년 12월 28일 일본에서 방영됐고, 시청률 30.1퍼센트를 기록해 세계명작극장 시리즈 역대 최고치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성당 안에는 관람객도 사제도 없었다.
얼어붙은 소년과 개, 그리고 한 곡의 노래만 남아 있었다. 이 장면 하나가 작품 전체의 음악 구조를 압축하고 있다.

루벤스 그림 앞의 아베 마리아, 기도가 된 가곡
네로가 평생 보고 싶어 한 건 루벤스의 제단화 네 점이다. 성탄절 밤, 성당 문이 우연히 열리고 소년은 마침내 그림 앞에 선다. 이 순간 화면을 채우는 곡은 프란츠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정식 제목은 엘렌의 세 번째 노래다.
이 곡은 원래 종교곡이 아니다. 슈베르트가 1825년에 쓴 일곱 곡짜리 가곡집의 한 곡으로, 월터 스콧의 서사시 호수의 여인을 독일어로 옮겨 붙인 세속 가곡이었다. 가사 속 엘렌이라는 인물이 성모에게 올리는 기도가 원곡의 내용이다.
가사 첫머리가 성모 호칭으로 시작한 탓에, 19세기 후반부터 유럽 성당과 혼례·장례 자리에서 라틴어 가사로 바꿔 부르는 관행이 굳어졌다. 세속 가곡이 종교의식의 정서를 흡수해 버린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는 짚어둘 만하다. 흔히 '아베 마리아'로 불리는 명곡은 두 곡이다. 슈베르트의 이 곡과, 바흐의 건반곡에 구노가 멜로디를 덧붙인 또 다른 아베 마리아가 종종 혼동된다.
작품 속 장면은 슈베르트 쪽이며, 두 곡은 작곡 시기도 30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오늘날 음반사에서도 두 곡을 별도 트랙으로 구분해 표기하는 것이 관례다.
이 곡이 가톨릭 국가 벨기에를 배경으로 한 작품의 클라이맥스에 놓인 건 우연이 아니다. 루벤스의 제단화 자체가 십자가형과 부활을 그린 가톨릭 도상이다. 그림과 곡 모두 원래는 각자의 영역에 있었으나, 19세기 유럽의 신앙 정서가 둘을 같은 자리로 끌어다 놓았다.
내 주를 가까이, 찬송가가 된 죽음의 순간
소년이 천사를 따라 하늘로 오르는 마지막 장면에는 또 다른 곡이 흐른다. 새라 플라워 애덤스가 1841년에 쓴 찬송 시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한국 찬송가집 338장으로도 실린 곡이다.
이 곡은 본래 한 영국 시인의 종교시였을 뿐인데, 1912년 타이태닉호 침몰 당시 악단이 마지막까지 이 곡을 연주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죽음을 앞둔 인간의 곡으로 굳어졌다. 다만 이 일화는 지금도 사실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 생존자들의 증언이 서로 달랐고, 정확히 어떤 곡이었는지는 역사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이 전설은 곡 자체에 임종의 이미지를 단단히 덧씌워 버렸다. 한 세기가 지나도록 이 곡은 영미권 장례식과 추모 자리에서 가장 자주 선택되는 찬송가 중 하나로 남았다.

이 찬송가가 동아시아까지 흘러온 경로도 짚을 만하다. 19세기말 개신교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진 뒤 한국 찬송가집에도 일찍부터 수록됐다. 종교적 배경을 설명하지 않은 채 이 곡을 클라이맥스에 쓴 일본 애니메이션의 선택도, 이런 전파 경로를 빼놓고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작품은 정확히 죽음의 이미지를 가져온다. 소년의 죽음이라는 가장 무거운 장면에, 이미 죽음의 상징이 된 찬송가를 얹은 것이다. 동아시아 시청자 대다수는 가사도 그 배경도 모른 채 곡을 들었지만, 선율 자체의 정서만으로 작별의 무게는 충분히 전해졌다.
주제가 하나로 두 세대를 묶은 추억 마케팅
한국 방영판 주제가 먼동이 터오는 아침에는 일본 원곡과 별개로 한국에서 따로 작사·작곡된 곡이다. 1970년대 후반, 외국 애니메이션을 들여오며 주제가까지 새로 짓는 더빙 관행이 자리 잡던 시기의 산물이다. 이 작품은 1975년 TBC, 1981년 KBS1TV, 1988년 KBS2TV, 1994년과 2007년 EBS, 2017년 대원방송까지 거듭 재더빙되며 방영됐고, 그 과정에서 주제가도 판본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이 곡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1992년 가수 이승환이 결성한 음악 유닛 이오공감이 같은 곡을 다시 불러 새 세대에게 전했다. 2005년에는 한 이동통신사가 후렴구를 광고 로고송으로 그대로 가져다 썼다.
원작 방영 30년 뒤에도 같은 멜로디가 소비된 셈이다. 다만 이오공감의 리메이크는 애니메이션 주제가 부분을 사전 협의 없이 가져다 쓴 탓에 한동안 표절 시비를 겪었고, 이후 저작권료를 지불하며 정리가 끝났다.
지금도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의 7080·올디스 플레이리스트에는 이 주제가가 빠짐없이 오른다. 1970년대생부터 1980년대생까지, 세대를 건너 같은 멜로디가 재생되는 셈이다. 재더빙판마다 성우진이 바뀌었어도 이 멜로디만은 그대로 유지됐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오공감의 1992년 리메이크 버전을 감상해 보시기를 바란다.
이 흐름은 추억 마케팅이라는 유행의 전형이다. 원곡 자체의 완성도보다, 그 멜로디가 불러내는 특정 세대의 기억이 상품 가치로 거래된다. 작은 만화 주제가 하나가 30년 넘게 한국 대중문화 안에서 거듭 재활용된 사례는, 음악이 시간을 건너 산업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수록곡 정리
| 아베 마리아(엘렌의 세 번째 노래) | 프란츠 슈베르트, 1825년 | 마지막 회, 루벤스 제단화 장면 | 원곡은 세속 가곡, 라틴어 가사는 후대에 붙음 |
|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 새라 플라워 애덤스 찬송시, 1841년 | 마지막 회, 승천 장면 | 한국 찬송가 338장, 타이태닉 연주설은 미확정 |
| 먼동이 터오는 아침에 | 김용선 작사·작곡(한국 방영판) | 한국 방영판 오프닝 | 1992년 이오공감 리메이크, 2005년 LG텔레콤 로고송 |
3줄 요약
- 마지막 회의 핵심 음악은 슈베르트 아베 마리아와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두 곡이다.
- 두 곡 모두 원래 종교곡이 아니었으나, 후대의 관행과 전설이 종교적 무게를 덧씌웠다.
- 한국판 주제가는 1992년 이승환 리메이크, 2005년 광고 로고송으로 30년을 건너 재활용됐다.
나는 어릴 때 이 만화를 끝까지 보지 못했다. 마지막 회를 본 기억이 없어서, 이번에 자료를 찾으며 처음 결말 음악을 제대로 들었다. 두 곡 다 종교곡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의외였고, 그 의외성이 이 글을 쓰게 만든 핑계다.
FAQ
Q. 플란더스의 개 마지막 회에 나오는 아베 마리아는 누구 곡인가
A. 프란츠 슈베르트가 1825년에 쓴 가곡으로, 정식 제목은 엘렌의 세 번째 노래다.
Q.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타이태닉호에서 실제로 연주됐나
A. 그런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으나 생존자 증언이 엇갈려 사실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
Q. 한국 방영판 주제가는 일본 원곡을 번역한 것인가
A. 아니다. 일본 원곡과 별개로 한국에서 따로 작사·작곡된 곡이다.
참고 출처
- 나무위키·플랜더스의 개(애니메이션) 문서
- 위키백과·플랜더스의 개(애니메이션) 문서
- NYCultureBeat·플란다스의 개 다시 보기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