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큐브릭은 알렉스 노스가 수개월을 매달려 완성한 오케스트라 악보를 한 음도 쓰지 않았다. 그 사실을 노스는 1968년 뉴욕 시사회장에서야 알게 됐다. 클래식 음악이 우주 공간을 차지하게 된 배경에는, 영화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거부된 악보의 이야기가 있다.
큐브릭이 작곡가 몰래 음악을 바꿔버린 영화
알렉스 노스는 수개월 동안 이 영화의 음악을 썼다. 큐브릭은 그것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고, 노스에게 알리지 않았다.
자라투스트라를 우주 장면에 넣은 선택의 이유
큐브릭이 임시 편집용으로 쓴 클래식 음악이 최종 음악이 됐다. 편곡된 오케스트라보다 원전이 더 맞는다는 판단이었다.
30년 뒤 발견된 알렉스 노스의 버려진 악보
1993년 제리 골드스미스가 노스의 원본 악보를 발굴해 녹음했다. 거부된 음악이 어떤 소리였는지 그때야 들을 수 있었다.
참고한 기록들
- AFI Catalog of Feature Films — 2001: A Space Odyssey (1968)
- Wikipedia, 「2001: A Space Odyssey (score)」
- Wikipedia, 「2001: A Space Odyssey (soundtrack)」

검은 화면 위로 태양이 떠오르는 오프닝 장면 (Google Gemini AI 생성 이미지)
큐브릭이 악보를 바꾼 결정적 이유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오프닝 두 분이 넘게 걸렸다. 검은 화면, 침묵, 그 다음 브라스. 그 브라스가 어디서 온 것인지 나중에야 찾아봤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896년에 쓴 교향시였다. 70년이 지나 우주 오프닝에 배치됐다.
큐브릭은 편집 단계에서 임시로 클래식 음악을 썼다. 알렉스 노스가 아직 악보를 작업하는 동안, 큐브릭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다뉴브 강의 왈츠, 리게티의 작품들을 편집본에 얹어 두고 있었다. 작업이 완성돼가면서 큐브릭은 노스의 악보 대신 이 임시 음악을 그대로 쓰기로 결정했다. 노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큐브릭은 악보를 거부한 게 아니라 그것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처리했다. 이것이 알렉스 노스의 이야기에서 가장 잔인한 부분이다. 거부라면 대화가 있어야 한다. 큐브릭은 대화 없이 사실만 남겼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우주를 열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뒤에 연주회에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은 적이 있다. 콘서트홀에서는 그냥 교향시였다. 그런데 영화를 알고 난 뒤로는 이 도입부가 영화의 이미지 없이는 들리지 않았다. 두 가지가 이미 하나가 돼 있었다.
큐브릭이 이 영화에서 쓴 클래식 음악들은 아래와 같다.
| 곡명 | 작곡가 | 영화 속 장면 |
|---|---|---|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1896) | 오프닝, 모노리스 장면 |
| 다뉴브 강의 왈츠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1866) | 우주정거장 도킹 장면 |
| 발레 '가야네' 중 아다지오 | 아람 하차투리안 (1942) | 우주선 내부, 광활한 고독 장면 |
| 룩스 애테르나 외 3곡 | 죄르지 리게티 (1961–1966) | HAL 9000 컴퓨터 장면, 목성 여행 |
표 1. 2001: A Space Odyssey 삽입된 클래식 곡목
클래식 음악을 영화 음악으로 쓰는 것은 처음엔 편의처럼 보인다. 그런데 2001을 보고 나면 그것이 유일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의 새벽과 우주 여행을 다루는 이 영화에서, 1968년에 새로 만든 오케스트라 음악은 영화보다 짧은 시간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백 년을 살아온 음악이 우주를 배경으로 울렸을 때, 시간의 깊이가 화면과 일치했다.
알렉스 노스가 시사회에서 발견한 것
알렉스 노스는 아카데미 수상 경력이 있는 영화 음악 작곡가였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스파르타쿠스, 클레오파트라를 작업한 사람이었다. 그가 뉴욕 시사회장에 들어섰을 때, 오프닝에서 흘러나온 것은 자신이 쓴 음악이 아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았다.
이 비하인드를 알고 영화를 다시 봤다. 오프닝 브라스가 시작될 때 노스의 입장에서 그 순간을 한 번 상상해봤다. 자신이 쓴 악보를 기대하며 앉았다가, 완전히 다른 음악이 나오는 순간. 그 시사회장 안에서 노스만 알고 있었던 것이 있었을 것이다.
노스는 나중에 이 경험에 대해 말했다. 당혹스럽고 화가 났지만 동시에 영화를 보면서 큐브릭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했다. 이 고백이 이 이야기에서 가장 쓸쓸한 문장이다. 맞는 선택이었더라도 그것을 시사회에서 처음 알게 된 것은 옳지 않았다.
버려진 악보가 살아남은 이유
알렉스 노스의 악보가 2001에 쓰였다면, 이 영화는 다른 영화가 됐을 것이다. 더 나빴을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없는 그 오프닝은, 지금처럼 인류의 새벽을 신화적인 무게로 열어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70년을 살아온 음악이 가진 시간의 밀도가 거기 있었다.
1993년, 영화가 나온 지 25년이 지나 제리 골드스미스가 알렉스 노스의 원본 악보를 발굴해 녹음했다. 이 앨범을 들으면 노스가 어떤 음악을 썼는지 알 수 있다. 영화에서 쓰인 음악보다 따뜻하고 낭만적이다. 우주를 신화가 아닌 인간의 언어로 다루고 있다. 큐브릭의 선택이 왜 달랐는지도 그 앨범을 들으면 더 잘 이해된다.
다시 한번 오프닝 브라스를 들어보면 좋겠다. 이번에는 그것이 1896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면서. 그 음악이 70년 뒤 우주 공간에 어떻게 맞아 들어갔는지를 생각하면서.
음원 출처: Spotify 공식 플레이어 (Richard Strauss, Wiener Philharmoniker, Herbert von Karajan, 「Also sprach Zarathustra: Main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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