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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비하인드

밀양, 음악을 거의 안 쓴 감독의 곡

by 핑계왕초 2026. 8. 5.

밀양(2007) OST.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에 음악을 거의 쓰지 않았다. 유일하게 남은 주제가 '크리올로'는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에 아르헨티나 작곡가 크리스티안 바소가 남긴 곡이다. 절제된 음악이 오히려 감정을 더 크게 만드는 방식을 오늘 따라가 본다.

세 줄로 읽는 핵심

이창동은 이 영화에 음악을 거의 안 썼다

감정을 음악으로 지시하지 않는 절제된 연출 방식이, 142분 러닝타임 대부분을 무음에 가깝게 채운다.

주제가 크리올로는 아르헨티나 작곡가의 곡이다

탱고와 이탈리아 음악, 재즈, 남미 민속음악을 함께 다뤄온 크리스티안 바소가 이 곡을 남겼다.

엔딩은 음악 없이 햇볕만 비추고 끝난다

마당 한 구석 지저분한 땅 위로 햇볕이 내려앉는 마지막 장면에 음악은 끼어들지 않는다.

참고한 기록들

  • • Wikipedia(영문), "Secret Sunshine" 항목 (en.wikipedia.org) — 제작·수상·크레딧 정보
  • • Wikipedia(영문), "Christian Basso" 항목 — 작곡가 이력
  • • 위키백과, "밀양 (영화)" 항목 — 줄거리·수상 정보

밀양 2007 크리올로 마당 햇볕 엔딩

마당 한구석, 지저분한 땅 위로 내려앉는 햇볕을 형상화한 이미지

목차

음악을 거의 쓰지 않은 감독이 부른 아르헨티나 작곡가

밀양은 2007년 5월 23일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이다.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를 원작으로, 남편을 잃고 아들마저 유괴로 잃은 신애가 밀양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삶을 다시 세우려 애쓰는 이야기를 그린다. 같은 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고, 주연 전도연이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창동 감독은 오래전부터 음악을 절제해서 쓰는 연출로 알려져 있다. 인물의 감정을 음악으로 미리 알려주지 않고, 관객이 장면 자체에서 감정을 읽어내도록 비워두는 방식이다. 그런 감독이 이 영화의 음악을 맡긴 사람은 한국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출신 작곡가 크리스티안 바소였다. 196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바소는 재즈 베이시스트로 음악을 시작해, 탱고와 이탈리아 음악, 남미 민속음악을 클래식·영화음악의 전통과 접목시켜온 다악기 연주자다.

그가 남긴 주제가 '크리올로'는 영화 전체에서 거의 유일하게 완결된 형태로 남은 음악이다. 스페인어로 '토착의', '현지에서 태어난'이라는 뜻을 지닌 이 제목은, 밀양이라는 낯선 지방 도시에 뿌리내리려 애쓰는 신애의 처지와도 은근히 겹친다.
영화 삽입 버전과 2013년 정규 앨범 <Profanía> 수록 버전을 나란히 들어보면, 삽입곡 쪽이 더 건조하고 절제되어 있다. 앨범판은 현악이 조금 더 감정을 채워 넣는 쪽으로 다듬어져 있어서, 같은 멜로디인데도 영화 안에서 들을 때가 더 휑하게 들린다.

음원 출처: Spotify 공식 플레이어 — Christian Basso, 'Criollo' (Profanía, 2013 · 밀양(2007) 주제가로 먼저 쓰인 곡이 이후 정규 앨범에 재수록됨)

무음 속에서 음악이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순간들

영화 예고편에는 드라마 <연애시대> OST로 잘 알려진 노영심의 '보내지 못한 마음'이 배경으로 쓰였다. 잔잔한 피아노곡이 관객을 먼저 맞이하지만, 정작 142분짜리 본편 안에서는 그런 온기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남편의 죽음, 아들의 죽음, 신애가 손목을 긋고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장면까지, 대부분의 장면은 음악 없이 인물의 표정과 정적만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드물게 음악이 끼어드는 장면은 더 도드라진다.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러 간 장면에는 MC 스나이퍼의 '김치 한조각'이 삽입곡으로 흐른다. 가족의 죽음을 신고하는 장면에 음악을, 그것도 이런 곡을 붙이는 선택은 이례적이다. 이 장면은 지금 다시 떠올려도 속이 서늘해진다. 슬픈 장면에 슬픈 음악을 붙이지 않는 선택이, 오히려 슬픔을 더 오래 붙들어두는 방식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신애가 부흥회 현장에 난입해 "거짓말이야"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음반을 튼다. 신을 향한 신애의 분노가 대사가 아니라 남의 노래 가사를 통해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이 두 장면의 공통점은, 음악이 화면 밖에서 인물의 감정을 대신 설명하는 게 아니라 화면 안 어딘가에서 실제로 재생되고 있다는 점이다. 배경음악이 아니라 상황 안의 소리이기 때문에, 오히려 음악 없는 장면들과의 대비가 더 선명해진다. 절제가 만든 여백 위에서, 몇 안 되는 음악의 순간들이 유독 크게 들린다.

마당의 햇볕, 음악 없이 끝나는 엔딩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병원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신애가 스스로 머리를 자르려 하고, 종찬이 거울을 들어주는 장면이다. 카메라는 두 사람이 선 마당 한구석, 지저분하고 더러운 땅 위로 내려앉는 햇볕을 오래 비추다 끝난다. 이창동 감독과 전도연이 훗날 밝힌 바로는, 원래 엔딩은 신애가 저수지에 들어가 자살을 기도하는 훨씬 어두운 장면이었다고 한다. 그 버전을 걷어내고 지금의 담담한 마당 장면으로 바꾼 선택에는, 음악을 절제해온 감독의 태도가 그대로 이어진다.

이 장면에도 음악은 없다. 구원인지 체념인지 단정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을, 영화는 어떤 선율로도 해석해주지 않고 관객에게 그대로 넘긴다. 이 글을 정리하며 바지와치마 카운터에 앉아 크리올로를 다시 틀어보았다. 마당의 햇볕 장면이 떠오르는데도, 정작 그 장면에 이 곡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삼 걸렸다. 음악은 다른 데서 다 써버리고,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엔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은 셈이다. 칸영화제 수상 이후 이 영화가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지면서, 크리스티안 바소의 이름과 '크리올로' 역시 한국 관객뿐 아니라 해외 청자들에게까지 함께 퍼졌다. 그는 이후에도 자신의 정규 앨범 활동을 이어갔고, 이 곡은 2013년 앨범 <Profanía>에 다시 실리며 영화 밖에서도 독자적인 생명을 얻었다.

거의 쓰지 않은 음악이 오히려 오래 기억되는 경우다. 많이 들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몇 안 되는 순간들이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핑계왕초

영화음악과 OST에 새겨진 시간을 기록합니다. 본 글의 자료는 2026년 8월 5일 기준으로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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