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영화 《맨발의 이사도라》 원곡은 모리스 자르가 썼지만, 더 오래 사랑받은 건 폴 모리아 악단의 연주곡이다. 주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이 작품으로 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폴 모리아는 1975년 첫 내한 뒤 한국과 일본에서 120여 회 공연하며 이 선율을 세대 너머로 전했다.
세 줄로 읽는 핵심
원곡 대신 커버가 더 오래 남은 이유
모리스 자르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영화와 함께 묻혔지만, 폴 모리아가 편곡한 연주곡은 영화보다 오래, 더 넓은 대륙에서 살아남았다. 원작과 커버의 생명력이 역전된 드문 사례다.
폴 모리아가 이사도라를 편곡한 방식
현악과 오르간을 앞세워 원곡의 서정을 부드럽게 감쌌다. 목소리 없는 연주판이었기에 언어를 넘어 라틴아메리카부터 아시아까지 퍼져나갈 수 있었다.
120여 회 내한 공연이 남긴 세대의 습관
폴 모리아 악단은 1975년부터 한국을 반복해 찾았고, 그의 연주곡들은 다방과 라디오를 통해 일상의 배경음이 됐다. 영화를 몰라도 이 선율은 익숙한 세대가 있다.
참고한 기록들
- 위키백과 "맨발의 이사도라" — 감독·주연·줄거리, 칸영화제 수상 확인
- 영문 위키백과 "Isadora (film)" — 음악 크레딧(모리스 자르), 개봉일·러닝타임 확인
- Spotify 아티스트 페이지(Paul Mauriat) — 앨범 《Vole vole farandole》 발매 연도, 트랙 구성 확인

저녁 다방 조명 아래, 돌아가던 턴테이블 한 대
모리스 자르의 원곡이 잊힌 자리
《맨발의 이사도라》는 카렐 라이츠 감독이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의 말년을 그린 1968년 영국·프랑스 합작 영화다. 주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이 배역으로 1969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영화 음악은 《닥터 지바고》,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익숙한 모리스 자르가 맡았다. 극 중 무용 장면 음악은 안소니 보울스가 따로 담당했다. 배급사 편집 과정에서 흥행이 부진했던 탓에, 이 스코어는 정식 음반으로 널리 유통되지 못했다.
극장 개봉 당시 이 영화를 직접 본 기억은 없다. 다만 '이사도라'라는 제목의 선율만큼은 영화보다 먼저, 훨씬 더 자주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원곡을 쓴 이의 이름을 알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영화는 원래 177분짜리로 완성됐다가 여러 차례 편집을 거쳐 각국에서 140분, 131분 등 서로 다른 길이로 개봉됐다. 편집판마다 음악이 들어간 자리도 조금씩 달랐다는 뜻이다. 정작 관객의 귀에 오래 남은 건 어느 편집판의 장면이 아니라, 그 장면 밖에서 따로 살아남은 테마 한 곡이었다.
폴 모리아, 현을 다시 편곡하다
폴 모리아는 1965년 자신의 그랜드 오케스트라를 결성한 뒤, 이미 있던 영화·가요 선율을 목소리 없는 연주곡으로 재편곡하는 방식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쌓아온 지휘자다. 《맨발의 이사도라》의 테마도 그 방식대로 다시 태어났다.
원곡의 극적인 기복을 덜어내고, 현악을 두껍게 깔아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흐르게 했다. 자르의 원곡이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오르내렸다면, 모리아의 편곡은 그 감정을 하나의 잔잔한 파도로 눌러 편다.
이 곡은 1969년 앨범 《Vole vole farandole》에 실려 발매됐다. 가사도, 대사도 없는 연주곡이었기에 언어의 경계 없이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시장까지 그대로 건너갈 수 있었다.
스무 살 무렵엔 그저 배경에 흐르는 조용한 곡으로만 들었다. 나이가 들어 다시 들으니, 현이 밀고 당기는 그 잔잔한 굴곡 안에 은근한 긴장이 숨어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 항목 | 모리스 자르 원곡 | 폴 모리아 편곡 |
|---|---|---|
| 발표 연도 | 1968년 | 1969년 |
| 성격 | 극영화 삽입 스코어 | 독립 연주곡(경음악) |
| 편성 | 기복이 큰 극적 오케스트레이션 | 현악 중심, 잔잔한 단일 흐름 |
| 유통 범위 | 영국·미국, 제한적 음반화 | 한국·일본·라틴아메리카까지 확산 |
같은 선율, 서로 다른 발매 경로
음원 출처: Spotify 공식 플레이어 — Paul Mauriat, 'Isadora' (Vole vole farandole, 1969)
지금도 재생되는 다방의 그 곡
폴 모리아 악단은 1975년 12월 처음 한국을 찾은 뒤 여러 차례 내한 공연을 이어갔고, 한국과 일본을 합쳐 120여 회 무대에 섰다. 아리랑과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직접 편곡해 음반에 담을 만큼 이 땅의 정서에 깊이 스며든 악단이었다.
그 시절 다방 스피커에서 이 곡이 흘러나올 때, 나도 곡 제목은 모른 채 그냥 익숙한 멜로디로만 흘려들었다. 이름을 알게 된 건 훨씬 나중이었다.
그 시절 다방과 경양식집에는 늘 이런 연주곡이 낮게 깔려 있었다. 곡 제목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멜로디는 공간의 일부였다. '이사도라'도 그렇게 이름 없이 자리를 지킨 곡 중 하나였다.
라디오 심야 음악 프로그램의 시그널 곡으로도 자주 쓰였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걸린 전주만으로 곡을 알아채는 청취자가 있었을 정도다. 방송사도, 다방 주인도 몰랐던 원곡의 이름을, 정작 그 자리에 없던 모리스 자르가 처음 붙여 두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영화는 잊혀도 선율은 다방 스피커를 타고 다음 세대의 귀에 먼저 도착했다. 원작보다 오래 남는 커버가 있다는 사실을, 이 곡을 다시 들을 때마다 새삼 확인한다.
핑계왕초
오래된 경음악 앨범을 뒤적이다 이 곡을 다시 만났다. 본 글의 자료는 2026년 8월 16일 기준으로 확인했다.
이 음악이 궁금하다면
같은 60년대 유럽 영화라도 선율이 남는 방식은 갈린다. 니노 로타는 한 멜로디를 화성만 바꿔가며 영화 안에서 반복해 감정을 쌓았고, 이사도라의 테마는 영화 밖으로 나가 전혀 다른 편곡을 입은 뒤에야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