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2016) OST. 나홍진 감독의 이 영화는 의심과 공포를 음악으로 설계한다. 굿 장면의 타악기 연주가 그 자체로 공포가 되고, 음악이 관객의 판단을 흐리는 방식이 어떻게 구현됐는지 살펴본다. 장영규와 달파란이 함께 만든 이 스코어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숲길을 걸을 때 문득 떠오른다.
세 줄로 읽는 핵심
음악이 정답을 안 알려줬기에 더 무서웠다
종교적으로 특정 인물을 규정할 만한 음악을 의도적으로 빼내고, 대신 관객의 판단을 흐리는 데 집중했다. 음악이 정답을 주지 않을수록 의심은 더 깊어진다.
일광의 음악에 일본 음계를 숨겨둔 이유
달파란 감독은 무당 일광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 일본 전통 오음계를 심었다. 대사 없이 음계 하나로 일광과 일본인 외지인의 관계를 미리 흘려놓는 방식이었다.
10년이 지나도 이 의심이 완성되지 않는 이유
영화는 끝나도 음악의 잔향은 의심의 형태로 남는다. 2016년의 공포가 2026년에도 여전히 실체를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유효한 이유다.
참고한 기록들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 곡성 스토리 칼럼 — kmdb.or.kr/story/417/7047
- IMDb · The Wailing (2016) — imdb.com/title/tt5215952
- 스타뉴스 · 달파란 음악감독 인터뷰 — 2016년 6월 10일

안개 낀 숲길. 음악보다 먼저 그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장면 (Google Gemini AI 생성 이미지)
의심, 종구의 일상을 파고드는 소리
곡성의 음악은 장영규와 달파란, 두 음악감독이 함께 만들었다. 영화 전반부는 장영규가, 후반부는 달파란이 주로 맡았다. 이 작업으로 두 사람 모두 제37회 청룡영화상 음악상을 수상했다.
경찰 종구가 사건 현장에 출동할 때, 음악은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금속성 소음을 낸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지금 보고 있는 평범한 현장이 사실은 오염된 공간임을 직감하게 한다. 종구의 시선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불안한 선율과 함께 쉼 없이 흔들린다. 음악은 인물의 불안과 관객의 의심을 이어주는 다리이며, 그 다리 위에서 관객은 서서히 이성적인 판단력을 잃어간다.
2016년 여름, 춘천의 한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다. 경찰 종구가 출동하는 장면에서 처음 그 금속성 소음을 들었을 때, 화면보다 귀에 먼저 무언가 잘못됐다는 신호가 왔다. 시각이 아니라 청각이 먼저 경고를 보내는 영화는 흔하지 않다.
공포, 내부의 의심을 증폭시키는 음악
과거의 공포 영화 음악이 성가대나 강렬한 합창곡으로 외부의 악을 강조했다면, 곡성은 다르다. 달파란 감독은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비하인드를 밝힌 적이 있다. 황정민이 연기한 무당 일광이 처음 등장할 때 깔린 음악은, 사실 일본 전통 오음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일광이 일본인 외지인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대사가 아니라 음계 하나로 미리 흘려놓은 셈이다. 이 장치를 알아챈 관객은 거의 없었다고, 달파란 감독은 훗날 웃으며 회고했다.
종교적으로 특정 인물을 규정할 만한 음악은 오히려 의도적으로 뺐다. 정답을 알려주는 음악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영화 초반부에 흐르는 성경 구절은 누가복음 24장 37절에서 39절로, 부활한 예수를 유령으로 착각한 제자들에게 그가 실체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이 구절은 영화 결말부에서 다시 한번 인용되며, 음악의 침묵과 함께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따로 있다. 외지인과 신부가 마주하는 후반부, 음악은 한순간 완전히 사라진다. 그러다 심장 소리가 커지듯, 다시 서서히 차오른다. 만약 이 침묵과 재개의 설계가 없었다면 그 장면은 그저 긴 대치로 끝났을 것이다. 몇 해 전 카페 문을 닫은 밤, 이 비하인드를 검색해 읽고 나서 그 장면을 다시 찾아봤다. 처음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무게가 느껴졌다.
정작 이 음악을 다시 들으려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곤란을 겪었다. 곡성은 정식 OST 음반이 발매된 적이 없는 영화다. 달파란 감독이 직접 밝힌 사실이다. 엔딩 크레디트 음악 정도만 겨우 찾아 들을 수 있을 뿐, 나머지 곡들은 지금도 정식 경로로는 들을 수 없다.
굿 장면의 장구와 징이 빠르게 교차하며 울리는 타악기 연주는, 무당 일광의 격렬한 움직임과 함께 박자가 올라갈수록 공포도 함께 상승한다. 유튜브에서 '곡성 굿 장면' 또는 '곡성 OST 달파란'으로 검색하면 관련 클립을 찾을 수 있다. 정식 OST 앨범은 발매된 적 없어 공식 음원 서비스에서는 제공되지 않는다.
음악, 오래도록 남는 불안의 잔향
이 영화는 2016년 5월 12일 개봉해 러닝타임 156분으로 최종 약 688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나홍진 감독과 두 음악감독은 156분이라는 시간 동안 관객을 완전히 제압한다. 제37회 청룡영화상에서 감독상을 포함해 그해 여러 영화상을 받았다. 수상의 이유는 분명하다. 이 영화의 음악은 공포를 설명하지 않고, 공포가 스며들 자리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지난가을, 소양강변을 따라 걷다가 안개가 짙게 낀 밤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순간 문득 그 기괴한 현악기 소리가 떠올랐다. 영화는 끝나도 음악의 잔향은 의심의 형태로 남는다. 극장을 나서는 순간조차, 음악은 등 뒤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의심의 말을 건네는 듯했다.
그것은 단순히 무서운 영화를 본 기억이 아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 영화를 꺼내보는 이유도, 바로 그 멈추지 않는 경고음을 다시 확인하기 위함일 것이다.
핑계왕초
영화음악과 OST에 새겨진 시간을 기록합니다. 은퇴 후 다시 꺼내 든 영화들에서 음악이 먼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본 글의 자료는 2026년 7월 17일 기준으로 확인했습니다.
이 영화도 곁에 두고 싶다면
나홍진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의 음악이 곡성과 어떻게 다른지, 같은 공포를 다른 악기로 어떻게 풀어냈는지 이어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