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루스티켈리는 기관사의 감정을 설명하지 않았다. 화면 속 인물이 힘들 때도, 가족과 다툴 때도, 음악은 같은 무게로 흘렀다. 1956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 철도원에서 음악이 장면을 열어 두는 것이 이 영화가 선택한 문법이었고, 그 방식이 지금도 남아 있는 이유다.
증기를 내뿜는 기관차와 철로 옆에 선 남자, 1950년대 철도역 풍경
설명하지 않는 음악이란 무엇인가
저녁을 먹고 노트북을 켰다. 화면 밝기를 줄이고 혼자 봤는데, 기관사 안드레아가 기관실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잠깐 멈췄다. 늙어가는 남자의 얼굴에 불빛이 지나갔다. 루스티켈리의 테마가 그 얼굴 위로 흘렀다. 슬프다거나 아름답다거나 하는 말이 필요 없었다. 그냥 거기 있었다.
루스티켈리가 인물의 감정에 맞춰 음악을 설계했다면, 기관사 안드레아는 지금처럼 기억되지 않았을 것이다. 슬픈 장면에 슬픈 음악이 깔리면 관객은 그 감정대로 반응한다. 그런데 루스티켈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물이 무너지는 장면에도 음악은 담담하게 흘렀다. 그 담담함이 역설적으로 더 무겁게 눌렀다.
음악이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은, 관객에게 그 감정을 찾는 일을 돌려주는 것이다. 그 빈자리를 관객이 채운다. 비워 둔 자리가 오히려 오래 남는다.
기관사 안드레아의 얼굴과 현악
피에트로 제르미는 감독이자 주연이었다. 그가 연기한 기관사 안드레아는 평생 같은 노선을 달린 사람이다. 그 얼굴에는 화려한 것이 없다. 카메라는 그 얼굴을 판단 없이 담았고, 루스티켈리의 현악도 그 얼굴을 판단하지 않았다. 음악과 카메라가 같은 태도를 취한 영화였다.
루스티켈리의 이 영화 이전 작업과 이후 작업을 찾아 들은 적이 있다. 같은 작곡가의 다른 영화들은 장면에 반응하는 음악이 더 많았다. 철도원에서만 이 담담함이 이렇게 일관됐다. 제르미 감독의 요청이 있었는지, 루스티켈리 자신의 선택이었는지는 기록이 없다. 그 이유를 모르는 채로 음악을 듣는 것이 오히려 이 영화에 맞는 방식이다.
피아노와 현악이 주선율을 이루는 구성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단순함이 선택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영화음악이 오페라 전통에서 물려받은 화려함을 기본값으로 삼던 시기에, 루스티켈리는 의도적으로 반대 방향을 택했다.
영화 속 안드레아는 열차 앞으로 뛰어든 남자를 목격한 뒤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음주 문제가 드러나고, 강등과 감봉을 겪는다. 이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루스티켈리의 음악은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몰락을 그리는 영화에서 음악이 함께 몰락하지 않는다는 것, 그 어긋남이 오히려 안드레아라는 인물을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남게 한다.
이 곡의 스트리밍 부재는 확인해볼수록 흥미롭다. 이탈리아 빈티지 영화음악을 전문으로 복각해온 Cinevox·Digitmovies·GDM 같은 레이블들의 카탈로그를 뒤져봐도, 루스티켈리의 다른 대표작들(대부·형제, 태양의 아이들, 아미치 미에이)은 스트리밍에 다 올라와 있는데 철도원만 빠져 있다. 이 곡은 검색이 서툴러서가 아니라, 실제로 아직 디지털화되지 않은 스코어다.
실물로 남은 기록 — CAM 컴필레이션 LP
철도원의 스코어는 완전히 묻히지는 않았다. 1975년(1980년 재발매) 이탈리아 레이블 CAM이 낸 컴필레이션 LP 「Le Colonne Sonore Dei Film Di Pietro Germi」(카탈로그 번호 SAG 9059)의 A면 첫 곡(A1)이 바로 이 영화의 테마다. 제르미 감독과 루스티켈리가 함께한 영화들 — 이혼 이탈리아식, 유혹당하고 버림받다, 알프레도 알프레도 등 — 의 주제곡을 한데 묶은 앨범으로, 지금은 절판된 바이닐로만 존재한다. 프랑스에서는 1966년 Seven Seas 레이블이 "Il ferroviere / Les grands chemins" 7인치 싱글을 따로 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두 음반 모두 디지털 재발매 없이 중고 레코드 시장에서만 거래된다. 유튜브에서 "Il Ferroviere 1956 Carlo Rustichelli"로 검색하면 영화 속 실제 스코어를, "il Ferroviere Carlo Rustichelli guitar"로 검색하면 기타리스트 에디 위자자가 편곡한 클래식 기타 버전을 확인할 수 있다.
네오리얼리즘이 음악에 남긴 원칙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원칙은 직업 배우 대신 일반인, 스튜디오 대신 실제 거리, 드라마 대신 일상이었다. 그 원칙이 음악에도 이어졌다. 오케스트라 음악이 화면을 압도하는 대신, 화면 안으로 스며드는 방식. 음악이 주인공을 앞서지 않는다는 원칙이 이 영화에서 가장 철저하게 지켜졌다.
루스티켈리는 200편이 넘는 이탈리아 영화의 음악을 만들었다. 에니오 모리코네나 니노 로타에 비해 국제적 인지도는 낮지만, 이 시기 이탈리아 영화음악의 정체성을 만든 사람 중 하나였다. 그의 이름보다 그의 방식이 더 멀리 갔다. 유럽 아트하우스 영화음악이 감정을 유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한 데는 이 시기의 흔적이 있다.
전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이 음악적 태도는 단순한 기법이 아니었다. 전쟁이 끝난 뒤 남은 것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려 했던 시대의 선택이었다. 음악도 그 시대의 태도를 따랐다.
흑백 선율이 컬러 시대에도 남은 이유
이 영화를 지금 보면 화질보다 얼굴이 먼저 온다. 기관사의 얼굴, 그 얼굴에 지나가는 기차 불빛, 그 위로 흐르는 현악. 70년이 지났는데 그 조합이 낡지 않았다. 음악이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서, 그 빈자리에 지금의 감정을 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70년이 지난 뒤에도 이 선율을 들으면 설명되지 않은 채 남겨진 것들이 들린다. 그것이 이 음악이 계속 남아 있는 이유다. 말하지 않은 것이 더 오래 울린다.
한 번 더 들어보면 좋겠다. 기관실 창밖을 바라보는 안드레아의 장면에서 음악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그것이 달라졌다면 이 글이 하려던 말은 닿은 셈이다.
안드레아가 기관실 창밖을 바라본다. 기차가 선로 위를 달리고, 현악이 낮게 흐른다. 선율은 이 사람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창밖 불빛이 그의 얼굴을 지나간다.
담담한 선율, 세 줄로
기관사 감정을 설명하지 않은 루스티켈리 음악
루스티켈리의 선율은 인물이 힘들 때도, 행복할 때도 같은 결로 흘렀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 음악이 오히려 더 오래 남았다.
전후 이탈리아 노동자의 얼굴을 올린 방식
피에트로 제르미는 감독이자 주연이었다. 카메라는 기관사의 얼굴을 판단 없이 담았고, 음악은 그 얼굴을 설명하지 않았다.
흑백 선율이 컬러 시대에도 살아남은 이유
네오리얼리즘 영화음악이 감정을 유도하지 않는 방식을 만들었다. 그 원칙이 이후 유럽 영화음악 전반에 흔적을 남겼다.
참고한 기록들
- Il Ferroviere (1956), Ponti-De Laurentiis Cinematografica — 감독·주연 Pietro Germi, 음악 Carlo Rustichelli
- Wikipedia(영문), "The Railroad Man" 항목 (en.wikipedia.org) — 줄거리·출연진·수상 기록
- Discogs, "Carlo Rustichelli – Le Colonne Sonore Dei Film Di Pietro Germi" (CAM, SAG 9059, 1975/1980) — A1 트랙 수록 정보
이 담담함이 궁금하다면
이탈리아 영화음악이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 방식을 만들었다면, 대부는 그 전통을 시칠리아 선율로 이어받아 갱스터 장르에 올려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