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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비하인드

아비정전 OST, 헌정곡이 된 거울 춤

by 핑계왕초 2026. 7. 3.

아비정전(1990) OST 마리아 엘레나는 원래 1932년 멕시코에서 헌정곡으로 쓰인 곡이다. 왕가위 감독은 하비에르 쿠가의 맘보 편곡판을 골라 거울 앞 홀로 춤추는 장국영의 등 뒤에 흘려보냈다. 헌정 인사말이 고독의 상징이 된 과정을 살펴본다.

헌정곡 하나가 거울 앞 고독으로 바뀌었다

정치적 예의로 시작된 선율이 라틴 리듬을 입으면서 관능과 나른함을 동시에 지니게 됐다.

크리스토퍼 도일과 처음 완성한 초록빛 톤

왕가위와 도일이 처음 함께 작업한 이 영화에서, 그 축축한 미학이 거울 장면에 응축됐다.

하비에르 쿠가는 화양연화와 2046으로 이어졌다

같은 뮤지션의 음악이 왕가위 세계관 안에서 그리움과 시간의 테마로 반복 변주됐다.

참고한 기록들

  • Wikipedia, 「María Elena (song)」
  • Wikipedia, 「Lorenzo Barcelata」
  • Tunefind, 「Days of Being Wild (1990)」 Soundtrack

런닝셔츠 차림의 주인공이 거울 앞에서 홀로 춤추는 장면

런닝셔츠 차림의 주인공이 거울 앞에서 홀로 춤추는 장면 (Google Gemini AI 생성 이미지)

목차
  1. 대통령 부인에게 헌정된 곡이 거울 앞에 서기까지
  2. 완성된 장면이 아니라 곡부터 골랐다
  3. 필름이 흐려져도 남는 것

대통령 부인에게 헌정된 곡이 거울 앞에 서기까지

이 곡에는 또 다른 시작이 있었다. 마리아 엘레나는 1932년 멕시코 작곡가 로렌소 바르셀라타가 만든 곡이다. 당시 정치인 부인에게 헌정하려고 썼다고 전해지며, 그 유래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전한다. 정치적 예의로 시작된 곡이 몇 십 년 뒤 홍콩의 한 청년 배우 등 뒤에서 흐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영화에는 하비에르 쿠가 악단의 맘보 편곡판이 쓰였다. 원곡의 헌정 인사말 같던 선율이, 라틴 리듬을 입으면서 관능과 나른함을 동시에 지닌 곡으로 바뀌었다. 왕가위 감독은 하비에르 쿠가를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꼽았고, 그의 음악은 이후 화양연화(2000)와 2046(2004)에도 다시 등장한다. 한 곡이 헌정에서 시작해 고독의 상징으로 옮겨가는 데 반세기가 걸린 셈이다.

이 곡을 왕가위가 오리지널 스코어로 새로 작곡했다면, 거울 장면은 지금과 다른 온도였을 것이다. 이미 반세기의 시간을 품고 있던 기성곡을 가져다 쓴 선택 덕분에, 장국영의 춤에는 그 곡이 지나온 세월의 무게까지 함께 실렸다.

하비에르 쿠가의 음악은 마리아 엘레나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같은 앨범에 실린 Perfidia 역시 이 영화에 삽입됐고, 이 곡은 이후 화양연화(2000)와 2046(2004)에도 반복해서 등장하며 왕가위 3부작 전체를 잇는 음악적 실마리가 됐다. 한 뮤지션의 카탈로그 전체가 세 편의 영화를 가로지르는 정서적 배경음으로 쓰인 셈이다.

완성된 장면이 아니라 곡부터 골랐다

왕가위의 작업 방식은 순서가 거꾸로다. 보통 감독은 완성된 편집본에 어울리는 음악을 나중에 찾는다. 왕가위는 반대로 움직인다. 배우 장만옥은 이 시기 왕가위와의 작업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편집실에서 그날 찍은 필름을 보며, 그 영화를 위해 골라둔 음악을 틀어놓곤 했다. 우리는 그 화면을 보며 처음으로 이 영화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 분위기를 촬영 내내 붙잡고 있었다." 음악이 대본보다 먼저 배우들에게 영화의 정서를 알려준 셈이다.

이 방식은 아비정전에서 처음 본격화됐다. 왕가위는 이전 작품 열혈남아(1988)에서도 서양 팝송의 광둥어 커버를 삽입해 자신만의 음악 어법을 시험한 바 있다. 아비정전에서는 그 실험을 라틴 음악 전반으로 확장했다. 마리아 엘레나를 비롯해 이미 발매된 기성곡들을 편집 단계보다 앞서 골라두고, 그 선곡에 맞춰 촬영 리듬과 배우들의 감정선을 조율했다.

완성된 장면에 나중에 음악을 얹었다면, 마리아 엘레나는 여러 후보곡 중 하나로 남았을 것이다. 편집 전부터 이 곡을 정해두고 그 정서를 촬영 내내 유지한 덕분에, 거울 앞 춤 장면은 나중에 붙인 배경음악이 아니라 애초에 그 곡을 위해 설계된 장면처럼 완성됐다.

필름이 흐려져도 남는 것

이 영화는 홍콩금상장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5개 부문을 받았다. 개봉 당시 흥행은 참패했지만, 지금은 왕가위 세계관의 실질적인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마리아 엘레나는 그 이후로도 왕가위 영화 속에서 반복해서 소환되는 음악적 계보의 시작점이 됐다.

기성곡을 새로 작곡하는 대신 가져다 쓰는 이 방식은 이후 왕가위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중경삼림(1994)의 California Dreamin', 화양연화(2000)의 우메바야시 시게루 Yumeji's Theme(원래 다른 감독의 1991년 영화 음악이었다), 해피 투게더(1997)의 탱고까지, 그는 계속 이미 존재하는 곡을 자신의 영화 안으로 데려왔다. 저작권 사용료를 지불하고 곡을 빌려오는 이 방식은 신곡을 위촉하는 것보다 저예산 촬영에 유리했고, 동시에 그 곡들이 이미 지나온 시간까지 영화 안으로 함께 끌어들이는 효과를 냈다. 아비정전의 마리아 엘레나는 그 방식이 처음으로 완성된 자리였다.

음원 출처: Spotify 공식 플레이어 (Xavier Cugat, 「Maria Elena」)

핑계왕초

헌정곡 하나가 고독의 상징으로 옮겨가는 데 걸린 반세기를 붙잡아 옮겨 적습니다. 본 글의 자료는 2026.7.3 기준으로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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