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헨리 8세와 앤 볼린의 사랑은 어째서 하나의 선율로만 남았을까.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들르뤼가 영화 <천일의 앤>을 위해 이 곡을 썼다. 제목은 'Farewell My Love', 2분 9초짜리 사랑의 테마다. 정작 세상에 각인시킨 건 원곡이 아니라 폴 모리아 악단의 연주였다.
처형대 앞, 세 줄로
정작 유명해진 건 원곡이 아니라 커버였다
정작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이 선율은 알았다. 라디오 앞에 앉은 이들은 곡의 출처를 몰랐다. 그저 폴 모리아 악단의 'Farewell My Love'로 기억했다. 원작자 들르뤼의 이름은 음반 뒷면에 조용히 남았다.
1969년 극장에서 라디오로 옮겨간 반세기
1969년 12월, 극장에서 처음 흘렀다. 이내 라디오 심야 프로그램의 단골이 되었다.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듣던 세대를 지났다. 지금은 스트리밍에서도 좀처럼 찾기 힘든 음반이 됐다. 반세기 넘게 이름 없이 떠도는 곡이다.
같은 시대를 그린 다른 영화음악으로 이어진다
이보다 앞선 1939년, 맥스 스타이너도 사람이 아닌 땅에 주제 선율을 붙였다. 스러져가는 옛 스튜디오식 대작의 계보는 그렇게 이어진다.
근거로 삼은 기록들
- 위키백과(영문판) 'Anne of the Thousand Days' 항목 — 개봉일, 아카데미 10개 부문 후보 및 의상상 수상 내역
- IMDb 'Anne of the Thousand Days' Awards 페이지 — 골든글로브 7개 부문 후보 및 작품상 수상 기록
- 위키백과(영문판) 'Georges Delerue' 항목 — 작곡가의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 이력과 활동 시기

처형일 하늘이 유난히 푸르렀다는 '앤 블루' 전설
왜 이 곡이 사랑의 테마였나
조르주 들르뤼는 원래 누벨바그(1950~60년대 파리의 영화 혁신 운동) 작곡가였다. 그런 그가 튜더 왕조(15~16세기 잉글랜드 왕가)의 궁정 음악을 썼다. 그 결과물이 'Farewell My Love'다. 음반 절반은 뉴욕 프로 무지카(고음악 전문 합주단)가 연주한 16세기 무곡이다. 지휘는 존 리브스 화이트가 맡았다. 그 사이 이 한 곡만이 개인의 마음을 노래한다. 궁정 예법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향해서다. 청계천 헌책방 골목에서 낡은 LP를 뒤지다 이 제목을 처음 봤다. 소리보다 제목이 먼저 마음을 붙잡았다. 자켓 뒷면엔 'Overture', 'Court Airs And Dances', 'Lute Song'이 나란했다. 'Farewell My Love'는 그중 네 번째 트랙이었다.
이별 전, 두 사람 사이 흐른 곡
TBC가 문을 닫던 1980년 겨울, 이 영화를 처음 봤다. 안방 흑백 텔레비전, 더빙판이었다. 그 아침 특선이 방송사의 마지막 날이었다고 훗날 알았다. 이 대목에서 선율이 밀려들 때, 어린 눈에도 뭔가 삼켜지는 기분이었다. 평자들은 이 곡을 앤 볼린의 목소리로 읽는다. 궁정 무곡과 팡파르가 스코어 대부분을 채운다. 이 선율만이 유일하게 인물의 내면을 향한다. 소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화려한 예복과 대관식 장면만 남았을 것이다. 왕비가 실은 죽음 앞의 인질이었다는 사실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2분 9초, 145분짜리 이야기 중 그 정도뿐이다. 리처드 버튼과 주느비에브 뷔졸드는 나란히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각각 헨리 8세와 앤 볼린을 연기했다. 울지 추기경을 연기한 앤서니 퀘일도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셋 다 트로피는 받지 못했다. 이 곡은 그 승부와 상관없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잰다.
정식 스트리밍에 남은 음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1970년 데카 음반 원곡을 대신해, 당시 극장에 걸렸던 예고편으로 그 공기를 짐작해본다.
영상 출처: <Anne of the Thousand Days> Official Trailer #1 (1969)
오스카가 선택한 다른 음악
1970년 봄, <천일의 앤>은 아카데미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트로피는 의상상 하나뿐이었다. 음악상 후보에 오른 이 곡도 수상엔 이르지 못했다. 그해 상은 버트 배커랙의 <내일을 향해 쏴라>에 돌아갔다. 뉴 할리우드(1960년대 말 등장한 새로운 흐름)의 총아였다. 격식 있는 관현악과 경쾌한 대중음악이 겨룬 해였다. <천일의 앤>은 구식 스튜디오 시스템의 마지막 대작 사극이다. 그런 영화의 곡이 살아남은 방식은 이례적이다. 다른 시대극 스코어는 대개 영화와 함께 잊힌다. 이 곡만은 이지 리스닝(가볍고 편안한 관현악 대중음악)의 옷을 입고 라디오를 탔다. 그해 라디오에서는 두 곡이 번갈아 나왔다. 하나는 경쾌했고 하나는 무거웠다. 어느 쪽이 그 시절다웠는지는 지금도 헷갈린다. 같은 해 작품상 후보엔 <미드나잇 카우보이>도 있었다. 거리의 인물을 그린 영화들이 나란히 올랐다. 궁정 예복 대신 청바지가 스크린을 채우던 시절이었다. <천일의 앤>은 그 흐름을 거스른 마지막 사극이었다.
반세기 뒤에도 남은 이유
한국에서 이 곡이 유독 오래 남았다. 이유가 있다. 폴 모리아 악단은 1970~80년대 여러 차례 내한공연을 가졌다. 그의 손을 거친 'Farewell My Love'는 라디오와 다방을 오갔다. 대학 시절 다니던 다방이 있었다. 디제이에게 이 곡을 신청한 적이 있다. 제목을 몰라 '천일의 앤에 나온 그 곡'이라고만 말했다. 그런데도 바로 알아들었다. 그렇게 세대를 넘겼다. 정작 원곡이 실린 1970년 데카 음반은 지금 스트리밍에서 찾기 어렵다. 전해지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앤 볼린이 처형된 날, 하늘이 유난히 맑고 푸르렀다. 사람들은 그 빛깔을 '앤 블루'라 불렀다. 궁정도 음반도 잊혀간다. 그 푸른빛과 2분짜리 선율만은 여태 어딘가에서 흐르고 있을 것이다. 앤 볼린의 이야기는 2007년 드라마 <튜더스>로 되살아났다. 2008년 영화 <천일의 스캔들>로도 거듭 되살아났다. 그럼에도 오래된 평자들은 1969년의 이 판본을 첫손에 꼽는다. 첫 목소리였다는 이유만으로 남는 자리가 있다.
핑계왕초
심야 상영관과 재개봉관을 떠돌며 옛 영화음악을 되짚는다. 이번 글의 자료는 2026.08.17 기준으로 확인했다.
웅장한 구식 스튜디오 사극의 계보는 이 곡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